不偏不當 正論直筆 불편부당·정론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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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偏不當 正論直筆 불편부당·정론직필
  • 정연무 기자
  • 승인 2020.04.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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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국민의 알 권리
정연무 기자
정연무 기자

오늘날 신문이 국민의 알권리와 권력 감시 기능을 저널리즘의 최우선 가치로 삼고, 신문을 이해관계에 따라 정파적 홍보도구로 이용하거나 이에 동조하지 않아야 함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국민의 알 권리를 위임받은 신문은 국민이 누려야하는 표현의 자유의  한 보장인 동시에 다양한 의견과 정보의 제공으로 공공의 토론을 촉진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공적인 기능을 다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로 자리함도 사실이다.

따라서 신문은 그것의 생성·존재의의·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기로써 사회에 미치는 영향, 이른바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의 편향되거나 왜곡되지 않는 진실보도·정보전달·계몽 등을 통한 건전한 사회 및 국가 형성에 이바지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대전제를 품어야한다.

따라서 신문은 최대한 독립적이어야 마땅하다.

이를 통해 신문의 주요 역할인 '권력 감시'와 '진실추구'로 신뢰를 얻고 사회정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으로부터 부여 받는 신뢰와 정의는 이런 역할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느냐에 달렸다.

권력에 영합하고, 권력의 말을 받아쓰는 신문은 스스로 신뢰를 떨어트리는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독립성을 잃어 자본에 종속된 신문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어 개혁을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자격 미달이다.

그래도 대다수의 신문은 개화기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근·현대적 커뮤니케이션 시대에서 정략적인 집단과 맞서고, 자본으로부터 오는 유혹을 뿌리치기도 했다. 상업주의와 싸우면서 객관성을, 정치권력과 맞서면서 자유언론과 사회책임을 전통으로 세웠다.

저널리즘의 이상과 실천과제를 다듬으면서 사회적 책임과 윤리도 실천했다. 

또한 ‘진실한 보도와 논평’을 애써 지키며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퇴보의 가치가 아니라 발전의 가치라는 원칙을 내면에 담았다.

그럼에도, 신문의 위상은 날로 위축되고 반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수년간 이어진 포스트 트루스(post-truth)가 불편부당, 직필정론을 위기로 몰아넣으면서 결국 많은 이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신문이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신문의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끌어 들여 부관참시(剖棺斬屍)하듯 과거사를 끌어올려 난도질 하는 것이 정도(正道)일 수 없지만, 이제라도 그간 누려왔던 무오류의 착각·폐쇄적 사고·권위주의·집단적 확증편향·통제와 주관성의 논리 등을 해체하고, 신문의 신뢰 회복을 바라는 각계각층의 거센 비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냉정하게 분석하고 냉철하게 전망해야 한다.

그리고, 발전을 위한 정책과 대안이 담긴 실천적인 정필로 본연의 존재를 찾아 추락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여기에 신문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쯤해서, 필자는 각종 권력으로부터 신문을 지키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가짜뉴스로부터 진짜뉴스를 지키면서 부당한 외부 압력과 간섭을 배격하고 진실보도라는 신문 본연의 가치를 생명줄로 여겨야 하는 것..불편부당, 정론직필(不偏不當 正論直筆)이 신문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고, 존재 이유라는 사실에 재차 동의한다. 

소망한다.

신문을 펼쳐 활자를 읽으면서 “왜곡된 진실이 아닐까” 의심부터 해야 하는 독자들의 수고로움이 없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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