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 체계적인 발전 큰 성과

                     이규상 기자.
                     이규상 기자.

이천이 탄생한지 100여 년 만에 선진국형 전기 지중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비록 짧은 0.5km의 시내 구간이지만 연차 사업으로 진행될 것이고 보면 이천의 발전이 크게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천시의 전기 지중화 사업은 약 10여 년 전 이천시의 신청사(현재의 청사)가 준공되면서 시청사 전면 주변에 배전선로 지중화가 처음으로 실시된 후 두 번째가 지난 2018년 국도 3호선(신둔면사무소 인근) 및 도로변 양방향 1.5km로 구간이었다. 

3번째가 바로 3월12일 이천시와 한국전력공사 이천지사가 시가지 도시미관 정비를 위한 배전선로 지중화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50대50의 부담으로 총예산 42억860만원의 배전선로 지중화 사업을 궤도에 올렸다.

올해는 서희로(공설운동장-중앙사거리), 영창로(관고동사무소-중앙사거리)의 0.5km로 구간이 대상으로 시내 배전선로는 두 번째로 시행하는 것이며 이천시의 배전선로 지중화사업이 본격적인 단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 공사는 2021년 6월 준공 예정이다. 

이천시가 돋보이는 것은 우선 난개발을 피했다는 점이다.

24년 전 시승격 이후 초대 유승우 시장은 문화개발에 치중했고 2대 조병돈 시장은 경제와 건설 분야(30만여 평의 중리신도시개발 계획 승인)를 추진했고 3대째 현 엄태준 시장은 중리신도시 개발의 본격착수와 선진국형 도시 개발 등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 1단계가 배전선로 지중화 사업인 것이다.

이렇게 이천시는 민선 3대째의 시장을 맞이하면서 저마다 추구하는 발전상이 다르다는 점이 앞으로의 새로운 이천의 모습이 기대되는 점이다.

이천은 지난 1895년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충주부 이천군에서 1896년 경기도 이천군이 된 것이며 101년 만인 1996년 이천시로 승격한 것이다.

오늘에 이천시가 이루어지기까지 이천의 연혁을 보면 지금의 이천시는 옛 이천도호부(利川都護府)와 음죽현(陰竹縣)이 합해 이루어진 시다. 옛 이천도호부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남매현(南買縣) 또는 고구려의 남천현(南川縣)이었으나 신라의 북진에 따라 신라의 세력권에 들어 568년(진흥왕 29)에는 이곳에 남천정(南川停)이 설치됐다가 604년(진평왕 26)에 폐지됐다.

백제 멸망 후인 662년(문무왕 2)에 남천주를 두었다. 삼국통일 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757년(경덕왕 16)에 황무현으로 개칭, 한주의 영현이 됐다. 고려초에 이천현(利川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광주의 속현이 됐다가, 1143년(인종 21)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1257년(고종 44)에 영창현(永昌縣)으로 개칭하고, 1392년에 남천군(南川郡)으로 승격됐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됨에 따라 1393년(태조 2)에 다시 이천현으로 복구됐다. 이어 시행된 군현제 개편에 따라 1413년(태종 13)에 이천현이 되고, 1444년(세종 26)에 도호부로 승격했다. 그러나 1613~23, 1644~53, 1729~37, 1776~95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충주부 이천군, 1896년에 경기도 이천군이 됐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음죽군이 없어지고 이천군에 합병됨으로써 면적이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이천군의 읍면·둔면(일부)이 읍내면으로, 신면·둔면(일부)이 신둔면으로, 사면·백면이 백사면으로, 부면·발면이 부발면으로, 대면·월면·초면이 대월면으로, 모면·가면이 모가면으로, 호면이 호법면으로, 마면·장면이 마장면으로 통합됐다. 음죽군의 8개면은 청미면·설성면·율면의 3개면으로 폐합돼 이천군에 편입됐다. 1938년에 읍내면이 이천읍으로, 1941년에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됐으며, 1989년에 부발면이 부발읍으로 승격됐다.

1996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이천군이 이천시로 승격했다. 이때 이천읍은 폐지되고 창전동·관고동·중리동 등 3개 행정동으로 분할돼 11개 법정동을 관할하게 됐다.

이같은 경로를 거친 이천군은 이천과 안협 지역이 합해 이루어진 곳이며 이천은 고구려시대에 이진매현이었으며, 신라시대에 이천으로 바뀌어 토산군에 속했다. 고려시대 1018년(현종 9)에는 동주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에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관됐다. 안협은 고구려 때 아진압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안협현으로 고치고 토산군에 속하게 했다.

고려 때에는 동주에 속했고 1414년(태종 14)에 삭령군과 합해 안삭군이라 했다가 이천군과 함께 강원도로 이관됐다. 1896년에는 안협군이 됐다가 1914년에 이천군과 통합됐다. 8·15해방 당시에는 이산면·용포면·동면·안협면·서면·학봉면·산내면·낙양면·판교면·방장면·웅탄면으로 이뤄져 있었다.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안협면·동면은 철원군으로, 방장면·판교면·낙양면(일부)·산내면은 판교군으로, 웅탄면은 법동군으로, 낙양면(일부)은 신계군으로 각각 분리시켰다. 1954년 10월에는 이천읍과 심동리의 일부를 신당리에 편입시켜 오늘에 이른다.

삼국시대를 거쳐 124년 만에 자랑스런 이천시가 된 것으로 24년전부터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엄태준 시장은 기존의 도시개발은 물론 새롭고 선진화된 이천시라는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어 앞으로의 이천의 모습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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