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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인 칼럼] 동네 부역(賦役)-주민자치활동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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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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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인 편집위원

며칠 전 시골에서 새벽에 부역을 했다. 마을회관의 화단에 영산홍을 심고 꽃 양귀비 씨를 뿌렸다. 20대에서 80대 노인까지 가정마다 한사람씩 나와서는 삽, 괭이, 뇌기와 호미를 가지고 열심히 파종하고 심고 가꾸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내 기억으로는 이전에 마지막으로 동네 부역에 참여한 것이 고등학교 때로 생각되니 40여 년 전은 되는 것 같다.

원래 부역이란 사전적의미로 보면 ‘국가나 공공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지우는 노역’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는 좀 거창한 의미인 듯 하고, 내가 참여하는 부역은 그냥 주민자치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지방자치시대에 맞는 말일게다.

어릴 적 고향에서 부역에 참여하여 땀 흘리던 모습이 새삼 파노라마로 이어 나온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일요일이면 동네 학생들이 소위 ‘애향단(愛鄕團)’이란 명칭 하에 마을안길 청소에 임했고, 꽃길도 가꾸곤 하였다. 그냥 빗자루 등 청소도구를 들고 학생이 있는 집 앞으로 지나가며 이름만 부르면, 졸린 눈들을 비비며 꾸역꾸역 모여들어 청소를 하곤 했다. 어른들은 가끔 비포장 신작로의 파인 부분도 메꾸고, 장마라도 지나고 나면 동네의 터진 둑이나 유실된 길을 고쳤다. 그 때는 우리 집 앞에 대동우물이 있었는데. 70여 호의 마을 사람들이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먹는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봄가을로 우물 대청소를 하고 소독을 하는 부역을 할 때는 장관이었다. 우물위에 삼각 거치대를 매고 큰 도르래를 매달고는 어른들 몇이서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찌꺼기와 우물 때를 벗겨 들통에 매달아 신호를 하면 바깥에 있는 동네사람들이 줄다리기라도 하듯 당겨가며 힘을 합치던 모습이 지금 생각하니 너무도 정겨운 추억거리였다. 지금의 모든 것을 세금으로 인력을 사서 처리하는 풍경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던 듯하다.

역경에 대동(大同)이란 말이 나온다. 지금도 연말이면 마을에서 대동회라 하여 통리장도 선출하고, 1년간 마을 살림살이에 대하여 결산도 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민족의 전통을 그래도 나름대로 유지해 온 근간 중에는 ‘대동회’와 ‘동네 부역’을 꼽고 싶다.

역경(易經)의 64괘중에 13번째가 천화동인(天火同人䷌)인데 보통 동인(同人)괘라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야외에서 사냥을 하거나 교외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우정을 위한 좋은 단합이라 한다. 우정의 진정한 기초는 인간 전체의 결속이고, 우정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 전체의 행복과 보편적 공동 작업이라 설명하고 있다. 14번째는 화천대유(火天大有䷍)의 대유(大有)괘인데, 하늘에 있는 태양의 광명이 선과 악을 환히 구별하고, 큰 풍년을 의미한다. 큰 풍년이 들었더라도 교만과 사치를 피하고, 작업과 분배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항상 염두에 두고 생활하라는 교훈이 있다. 두 괘에서 대유(大有)의 ‘대’와 동인(同人)의 ‘동’을 연결하여 ‘대동(대동(大同)’이라 한다.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이 정신이 지금은 많이 퇴색된 느낌이다. 그러나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에서, 도민체전이나 시민체육대회 등에서는 아직도 대동의 의미를 느껴볼 수는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아침의 부역이 오히려 나에게는 고향의 청량감을 더해주었다. 부역에서 땀을 흘리면 삼대가 못산다고 하는 조롱 섞인 옛날 분들의 꾀부리자던 말을 회상하며, 예전에 같이 부역하던 동네 동문들, 어르신들을 다시 떠올리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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