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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형덕이병(刑德二柄)-형과 덕은 통치자의 두 개의 칼자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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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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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편집위원

사람의 마음은 덕을 좋아하고 형을 싫어하니, 이것은 인간 생존의 본능이다. 통치자는 대신들의 이런 심리에 일부러 영합할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든 이것을 이용해야만 한다.

통치자가 덕을 활용하지 않으면 대신들의 마음을 굴복시킬 수 없다. 통치자와 신하의 관계에서 융통성 없는 권력의 사용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다. 통치자가 덕을 활용하는 것은 바로 대신들의 감정을 구슬리는 방책이며 그들로 하여금 은혜에 감사하여 기꺼이 불속에라도 뛰어들게 만든다. 하지만 통치자가 형벌을 활용하지 않으면 대신들을 통제할 수 없다. 대신들은 법규를 준수하고 직무에 힘써야 하지만, 항상 법규를 어기고 직무를 소홀히 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통치자가 이런 자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으면 대신들은 경계심을 잃고 서로 본받으며 나라의 기강을 흐트러뜨릴 것이다.

덕은 적어서는 안 되며 형도 없어서는 안 된다. 양자를 고루 사용하고 각각의 일정한 한계를 지켜야 한다. 신하들은 통치자의 은덕과 위엄을 알아야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게 된다. 통치자는 덕을 베풀고 형을 내리는 권력을 신하들에게 빌려주거나 빼앗겨서는 안 된다. 허수아비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형과 덕의 권력을 굳게 지켜야 한다.

형과 덕, 이 두 칼자루는 섣불리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호랑이는 발톱과 이빨이 있어야만 개를 제압할 수 있다. 호랑이가 발톱과 이빨이 없으면 결국 개에게 제압당하고 만다. 형과 덕은 통치자의 발톱과 이빨이다.

통치자가 은덕을 베풀고 형벌을 내리는 권력을 신하들에게 사용하게 하면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안자(晏子)와 함께 소해(少海)를 거닐다가 높은 누대에 올라 나라의 도읍을 돌아보았다. 경공이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아름답군, 저렇게 웅장하고 휘황찬란한 도성을 훗날 누가 차지하고 누리겠는가?”

안자가 대답했다.

“아마도 전성씨(田成氏)일 겁니다.”

경공이 놀라서 물었다.

“내가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데, 자네는 어째서 전성씨가 이곳을 차지한다는 건가?”

안자가 말했다.

“전성씨는 인심을 자기편으로 만들었습니다. 임금께 관직과 녹봉을 받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가 하면, 많은 양의 콩을 식량으로 빌려주고 소량만 돌려받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소를 잡거나 비단이 생기면 자기는 조금만 갖고 모두 식객들에게 나눠줍니다. 임금께서는 조세를 거두는 반면, 그는 널리 적선을 베풀고 있지요. 지난번, 우리 제나라에 기아가 닥쳐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았습니까? 그때, 많은 백성들이 전성씨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그의 적선에 백성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지요. 민심의 향방이 이렇기 때문에 앞으로 제나라를 차지할 사람은 전성씨라고 말한 겁니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상심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전성씨는 덕이 있고 경공은 덕을 잃은 까닭에 벌어진 결과다. 이런 상황은 제나라 간공(簡公) 시대까지 이어졌고, 마침내 전성씨는 간공을 죽이고 제나라를 손에 넣었다.

이번에는 군주가 형을 잃은 예를 살펴보자. 송(宋)나라에 자한(子罕)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군주를 찾아가 말했다.

“관직과 포상을 내리는 일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이니 임금께서 직접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죽이고 형벌을 내리는 일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니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군주는 꽤 좋은 생각인 듯했다. 그렇게 하면 자기는 백성들 사이에서 어질다는 명성을 얻을 뿐, 잔인하고 포악하다는 질책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송나라 군주는 덕을 행하고 자한은 형을 행했다. 마침내 자한은 군주의 위엄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흐른 뒤, 송나라 군주는 자한에게 피살되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만약 신하가 형과 덕, 두 권력을 차지하고 사용한다면 통치자는 제나라 간공, 송나라 군주보다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다. 형과 덕, 두 권력을 잃고도 망하지 않은 통치자는 지금껏 한 사람도 없었다. 형과 덕은 통치자의 도다. 결코 신하의 도가 아니다. 통치자의 도를 신하의 도로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

형과 덕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하나는 통치자의 손에, 하나는 신하의 손에 있으면 통치자는 통제력을 잃고 대신은 맘대로 날뛸 테니, 결국에는 통치자의 비극이 연출될 것이다.

 

일간경기  ilgang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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