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편집위원

“이 내용은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의 동화전(董和傳)과 자치통감(資治通鑑)의 위기(魏紀)에도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집사광익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유익한 점을 취하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집사광익’은 제갈량(諸葛亮)이 동료와 부하들에게 공개적으로 쓴 편지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는 반드시 모든 사람의 의견 제시가 이루어져야 더 크고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하거나 논쟁을 회피하기 위해 타인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 꺼린다면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모든 일은 반복된 토의를 거친 후에라야 가장 정확한 결론을 얻어낼 수 있다.

서원직(徐元直-서서(徐庶)은 이 방면에서 완전무결했다. 또 동유재(董幼宰-董和)는 7년을 재직하는 동안 어떤 일에 완전치 못한 점이 있으면 반드시 의견을 제출하도록 했는데, 어떤 때는 심지어 10여 차례 이상 반복 제기토록 하여 성심성의껏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당시 제갈량의 동료 중에서 서서와 동화, 이 두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표출했다. 제갈량은 이 편지에서 모두에게 이 두 사람을 본받으라고 호소하면서, 아울러 서서의 10분의 1이라도 배우고 동화의 근면하고도 진지한 태도를 배운다면 나라에 큰 이익이 되며 개인의 잘못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짧은 편지는 오늘날에 보아도 그 뜻이 생생하다. 앞에서 말한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으고 충성스럽고 유익한 점을 확대한다’는 뜻의 ‘집중사(集衆思), 광충익(廣忠益)’이 바로 ‘집사광익’의 본래 말이다. ‘집중사’는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은다’는 뜻이고, ‘광충익’은 일의 효과를 확대한다는 뜻이다. 다라서 ‘집사광익’은 여러사람의 지혜를 모아 공동으로 일을 잘 처리한다는 말이 된다.

고명한 지도자는 단순히 자신의 총명한 두뇌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사광익’의 본질을 이해하고 옆 사람들과 많이, 그리고 자주 상의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은 전쟁터의 승부를 결정하는 능력에서는 장량(張良)에 미칠 수가 없었다. 또한 백만 대군을 통솔해서 공격하면 꼭 깨드리고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점에서는 한신(韓信)을 도저히 좇아갈 수 없었다.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독거리며 군수물자를 징발하고 군량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면에서는 소하(蕭何)를 따를 수 없었다. 유방의 뛰어난 점은 다름 아닌 ‘집사광익’을 잘 활용해서 여러 사람의 지혜를 효과적으로 수렴한 데 있었다.

원나라 말기 주원장(朱元璋)이 금릉(金陵-지금의 남경)을 점령하자 진우량(陳友諒)이 공격해왔다. 대군이 변경을 압박해오는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측근들은 싸우자는 쪽과 항복하자는 쪽으로 갈라져 논의가 분분했다. 그런데 측근 중에서 유기(劉基)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주원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본 후 서둘러 결단을 내리지 않고 유기와 독대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했다. 유기는 장수와 병사들에게 큰 상을 내걸어 군심을 단단히 다진 다음, 병사를 매복해두었다가 틈을 타서 공격하자는 견해를 말했다. 주원장은 그의 견해를 전폭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신기료 장사 셋이 모이면 제갈량 하나를 당해낸다’는 속어는 ‘집사광익’이라는 계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커다란 효과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는 말이다. 고집불통으로 남의 의견을 듣지 않고 멋대로 결정을 내려서는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아집과 고집불통으로 얼룩졌던 박근혜의 정치행태의 비극적인 말로가 그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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