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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완 칼럼] 평택의 중심지 고덕의 옛지명 고두면을 제자리로 돌려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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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2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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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환 편집위원

2019년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9년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3.1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정부수립 100주년 되는 해이다. 평택시( 일제 강점기 당시 “진위현과 평택현)의 지역은 민세 안재홍선생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나라를 위해, 지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많이 계셨다, 이분들이 계셔서 자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뿐이다. 그중에서 특히 민세 안재홍 선생은 1891년 12월 30일(음 11월 30일)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현 평택시) 조덕면 두릉리(杜陵里)에서 순흥 안씨(順興安氏) 윤섭(允燮)과 남양 홍씨(南陽洪氏) 사이의 8남매 가운데 2남으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뒤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 해 5월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서울에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이라는 비밀결사가 조직되었다. 선생은 여기에 참여하여 총무로 활동하였는데(29세), 11월 이 단체가 대구에서 발각됨에 따라 피체되어 1921년 5월 징역 3년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고두면이 어디인가 ? 평택시의 중앙 부분에 위치하는 지금의 고덕면이다, 고덕면은 11개 법정리 혹은 42개 행정리로 구분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통합되면서 진위군 고두면의 고(古)와 수원군 종덕면의 덕(德)에서 한 글자씩 취하여 고덕면(古德面)이라고 행정구역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옛 수원군의 종덕면(宗德面)과 오타면(吾朶面) 그리고 옛 진위군의 고두면(古頭面) 3개 면이 합쳐진 것이다. 종덕면은 지금의 고덕면 윗부분, 즉 당현리·문곡리·두릉리 일대를 관할하던 면이었다. 고두면은 현재의 고덕면 중간 부분, 즉 율포리·좌교리·여염리 일대, 그리고 오타면은 현 고덕면 아랫부분, 즉 방축리·궁리·동고리 일대를 관할하던 면이었다. 종덕면은 "본래 양성(陽城, 현재의 진위 동쪽 지역에 해당)에 속하였으나 태종 17년(1417)에 이곳(수원)에 속하게 되었다."라고 『화성지』에 기록되어 있다. 또 종덕면은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당시, 고려 시대 특수행정구역인 '종덕장(宗德莊)'이 남아 있던 곳으로 기록되었다. 오타면은 원래 금물촌면(今勿村面)과 오타면 2개 면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호구총수』에는 '금물촌면'이 따로 기록되어 있고, 이에 속한 방리로 마분리(馬分里, 현 고덕면소재지 부근)와 금성당리(金城堂里)가 기록되어 있다. 이 금물촌면에는『세종실록지리지』 당시 고려 시대 특수 부락인 '금물촌처(今勿村處)'가 있었다. 그러나 『화성지』에는 "옛 금물촌면이 지금은 이곳(오타면)에 합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타면에도 예전에 고려 시대 특수행정구역인 '오타장(吾朶莊)'이 있었다.『여지도서』에 진위현 6개 면 중에 가장 호수가 적었고 동리도 2개뿐이었다. 그러나 『진위읍지』에는 13개 면 중에 두 번째로 큰 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은 근대 이전 내륙 깊숙이 조수가 밀려들고 갯벌이 발달한 오지였다. 또한 경작지와 식수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인구도 적었다. 그러다보니 독립된 행정구역을 설치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고려시대에는 수원도호부와 영신현, 오타장, 종덕장으로 나눠졌고, 조선시대에도 수원부, 양성현, 진위현, 평택현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이 때의 통합은 관련 있는 몇 개의 자연마을을 리(里)라는 행정구역으로 묶은 것에 지나지 않아 지명에 혼란을 가져왔다. 더구나 고유지명인 경우에는 음(音)이 비슷한 한자를 취하거나 새로 지명을 만들어 표기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은 더했다. 혼란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고문헌이나 고지도를 활용하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것으로는 16세기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8세기의 여지도서나 호구총수, 19세기에 편찬된 읍지(邑誌)가 대표적인 문헌이다. 고두면은 진위천 물줄기의 변화가 가져온 현상으로 형성된 11개 마을은 궁리, 해창리, 좌교리, 여염리, 율포리, 방축리, 동고리, 당현리, 두릉리, 문곡리, 동청리다. 이 마을들은 9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살면서 삶을 공유하고 공동체문화를 만들어 오늘에 이른다.

고덕국제신도시 건설하면서 “고덕면에 소재한 삼성전자반도체평택캠퍼스가 평택시에 지방세를 547억을 납부했다” 요즈음 평택지역 신문에 헤드라인에 써인 제목이다. 한 기업이 납부한 세금은 결코 작지만 않은 세금액수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몫은 하는 건 변명여지가 없을 것이다.

평택 고덕에 가면 고덕 삼성로가 있다. 2008년부터 착수된 고덕국제화계획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부지조성공사를 하면서 한복판에 삼성전자 회사가 생기면서 생긴 것이 고덕삼성로이다. 전국 어느 도시를 가든 삼성기업이 있으면 삼성로 도로명이 있다. 삼성은 세계적 글로벌기업이다. 삼성로가 들어가는 도로명을 만든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나다. 우리가 일본에게 100년 전에 빼앗긴 문화와 정신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잊혀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하루빨리 고두 지명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랄뿐이다. 고덕신도시는 다국적 국제화 도시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일간경기  ilgang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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