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편집위원

“적의 내부 모순이 격화되어 혼란이 생기면, 조용히 그 모순이 폭발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적이 내부에서 서로 등을 돌리고 으르렁 대면 대세의 흐름상 자멸하기 십상이다. 이 계략은 유순한 수단이긴 하지만, 앉아서 기분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계략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적에게 내분이 일어났을 때 섣불리 달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요구된다. 잘못했다가는 적으로 하여금 일치단결해서 맞서게 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통상 ‘산위에 앉아서 호랑이 싸움이나 구경하는’ 태도를 취하면 된다.

적의 내부 모순이 두드러져 서로의 알력이 갈수록 깊어져가는 데 성급하게 ‘불난 틈을 타 훔친다’는 ‘진화타겁(趁火打劫)’의 계략을 실행해서는 안 된다. 조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적으로 하여금 내분을 멈추고 잠시 연합하여 반격을 가할 틈을 줄 수도 있다. 일부러 한 발 양보하는 척하며 내부 모순이 발전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혼란이 조성되기를 기다림으로써, 적을 약화시키고 자신을 강화시키는 정치‧군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조조가 첫 번째로 ‘격안관화’를 활용한 것은 ‘삼국지(三國志)’에 나온다. 원소(袁紹)는 창정(倉亭)에서 다시 패배한 뒤 울화병 때문에 죽고 만다. 죽기에 앞서 원소는 어린 아들 원상(袁尙)을 자신의 뒤를 이어 대사마(大司馬) 장군에 임명했다. 이 무렵 투지에 불타고 있던 조조는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원씨 형제를 토벌하여 단숨에 하북을 평정하고자 했다.

조조의 군대는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여양(黎陽)을 점령하고, 빠른 속도로 기주성(冀洲城)에 이르렀다. 원상‧ 원담(袁譚)‧원희(袁熙)‧고간(高干) 등은 각기 네 방향으로 군대를 나누어 성을 사수했고, 조조는 총력을 다 해 공격했지만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때 모사 곽가(郭嘉)가 꾀를 냈다.

“원소는 큰아들이 아닌 막내아들로 자기 뒤를 잇게 했기 때문에, 형제지간이 각자 권력을 나누어 가진 채 패거리를 모으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두르시면 그들이 힘을 합칠 것이지만, 느긋하게 관망하시면 조만간 서로 싸울 것입니다. 차라리 군대를 형주(荊州) 쪽으로 돌려 유표(劉表)를 치면서 원씨 형제 사이에 모종의 변화가 발생하기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평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조는 곽가의 말에 따라 가후(賈詡)와 조홍(曹洪)으로 하여금 여양과 관도(官渡)를 지키게 하고는 곧 군을 이끌고 유표 토벌에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조조가 철군하자마자 맏아들 원담은 원상으로부터 계승권을 빼앗고자 칼을 뽑아들었다. 골육상잔의 내부 모순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원담은 원상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 조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조조는 때가 왔다고 판단, 곧장 북진하여 원담을 죽이고 원희와 원상을 물리침으로써 순식간에 하북을 손아귀에 넣었다.

조조의 두 번째 ‘격안관화’는 하북을 평정한 다음이었다. 조조에게 패한 원상과 원희는 요동으로 달아나 요동 지방의 실권자 공손강(公孫康)에게 투항했다. 하후돈(夏侯惇) 등이 조조에게 의견을 제출했다.

“요동 태수 공손강은 오랫동안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원희‧원상이 그에게 투항했으니 후환이 될 것이 뻔합니다. 그들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 속히 정벌하여 요동을 장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조조는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공들이 나서서 굳이 힘쓸 필요가 있겠소? 모르긴 해도 며칠 후면 공손강이 원씨들의 머리를 보내올 것이요.”

장수들은 물론 믿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되지 않아 공손강이 원희와 원상의 머리를 보내왔다. 장군들은 경악했다. 조조의 신출귀몰한 예견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조는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군!”

조조는 곽가가 죽기 전에 조조 앞으로 남긴 편지 한 통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 편지에는 대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 듣자 하니 원희‧원상이 요동으로 도망갔다고 하는데, 공께서는 서둘러 병사를 동원하지 마십시오. 공손강은 오랫동안 원씨에게 먹힐까봐 두려워해왔으니 두 원씨의 투항을 분명 의심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경하게 공손강을 치면 반드시 서로 힘을 합쳐 대항하고 나설 것이니, 서둘러서는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느긋하게 관망하고 있으면 공손강과 원씨는 서로를 노릴 것이 뻔합니다.’

원소는 살아 있을 당시 늘 요동을 손에 넣고 싶어 했고, 공손강은 이런 원씨 집안에 대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원씨 형제가 자신에게 투항해오자 공손강은 이들을 제거하고 싶었다. 다만 조조가 요동을 공격할까 겁이 나 두 사람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원희‧원상 두 사람이 요동에 도착한 뒤에도 곧장 그들을 만나 주지 않고 신속히 사람을 보내 조조의 동정을 알아보게 했다. 첩자는 조조의 군대가 역주(易州)에 주둔하고 있으며, 요동에 대해서는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 보고 했다. 공손강은 즉시 원희‧원상의 목을 베어버렸고, 조조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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