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완 편집위원

落照吐紅掛碧山(낙조토홍괘벽산), 寒鴉尺盡白雲間(한아척진백운간), 問津行客鞭應急(문진행객편응급),

尋寺歸僧杖不閒(심사귀승장불한), 放牧園中牛帶影(방목원중우대영), 望夫臺上妾低鬟(망부대상첩저환),

蒼煙古木溪南路(창연고목계남로), 短髮樵童弄笛還(단발초동농적환),

우리가 알고 있는 어사 박문수가 장원급제한 시조 “낙조(落照)”이다. 지난 12월3일 평택북부문화예술회관에서“창작 오페라 어사 박문수” 막을 올리기 전에 어사 박문수 컬렉션 새로운 장르로 시조“낙조(落照)”를 읊어지면서 서문을 열었다. 1막과 2막, 2막과 3막 사이에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과 함께 펼치는 한마당 결과는 대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역 주민들은 한결같이 우리고장에서 우리지역에서 이런 유명한 분이 태어났다는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수준높은 공연을 열게 해줘서 고맙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창작“오페라 어사박문수”는 평택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순수 문화예술 활동단체 평택송사모(송탄진위서탄고덕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원들이 사비털고, 평택오페라단 담소는 재능기부공연으로 천도 1,000주년을 맞는 경기도와 천년 넘게 지켜온 고도고을 평택(진위현)에서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낸 어사 박문수를 재조명하면서 옛 선현의 슬기와 지혜를 배우고, 역사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키는 기획의도로 어렵게 어렵게 시작되었다. 오페라의 즐거리는 이렇다 “평택(진위현)에서 태어난 어사 박문수는 조선 후기 지방 관리들에 대한 감찰과 민생을 점검한 최고의 암행어사로 흉년에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였고, 암행어사로 활동할 당시 수령 혹은 아전을 포함한 토호세력들의 비리를 발견하면 가차 없이 응징 하는 등 당파와 당론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백성을 가장 먼저 생각한 인물이었다는 점에 착안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자 종합 예술인 오페라를 통해 그의 일화”를 음악극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어사 박문수(朴文秀 1691-1756)는 누구인가 ? 1691년10월28일(음력 9월 8일) 평택(진위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1756년 5월 22일(음력 4월 24일) 서울에서 돌아가시고 사후에 천안 북면 고령박씨 집성촌으로 이장하여 영면하고 계신다, 조선 후기의 문신(文臣) ,정치가(政治家)이며, 시인(詩人)이다. 자(字)는 성보(成甫)이고 아호(雅號)는 기은(耆隱)이며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이조판서 박장원(朴長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세마(洗馬) 박선(朴銑)이고, 아버지는 영은군(靈恩君)박항한(朴恒漢)이며, 어머니는 오성 이항복의 현손녀이며 공조참판 이세필(李世弼)의 딸이다

영조때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할 때 명문벌열(名門閥閱) 중심의 인사 정책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으며, 4색(四色)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의 실(實)을 강조하였다. 특히, 군정(軍政)과 세정(稅政)에 밝아 당시 국정의 개혁 논의에 중요한 역할하였다고 한다. 박문수가 죽었을 때 사관은 이렇게 기록했다 - 《영조실록》 권87, 32년 5월조 “임금의 돌봄이 날로 높아져 벼슬자리가 정승의 반열에 이르렀다. 나라 일을 돌봄에는 마음을 다해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으며 병조·호조판서를 지낼 적에는 바로잡아 고친 것이 많았다. 여러 번 병권을 잡아서 사졸들의 환심을 샀다. -중략”

박문수는 여덟살 때 홀어머니 밑에서 외가(경주이씨 평택 진위세거) 도움 받으면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총민 활달 기지가 뛰어났다. 1727년 9월에 영남 별견어사로 임명되어 영남에 파견된 적은 있지만 암행어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영남에 어사로 있는 동안 환곡을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탐관오리들을 처리했을 뿐 아니라 명망있는 인물을 지방관으로 임명한 것을 통해서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다고 한다.

창작“오페라 - 어사박문수”를 통해 우리는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갖고있는 인문학 콘텐츠을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또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코드에 맞추어 만드려고 하거나 좋은 것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우리 것으로 찾아내고 살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다. 평택송사모 회원들이 사비털어 지역의 인문학을 바탕으로 문화관광콘텐츠 개발과 문화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창작 오페라 - 어사 박문수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지역의 문화원과 문화예술공모사업에 신청하였지만 극단도 아니고 오페라를 어떻게 할수 있냐고 하면서 임의단체이라는 이유 하나로 거절한 경기문화재단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천도 1,000주년 맞는 경기도와 천년 넘게 지켜온 고도고을 위해 무엇을 남겼는지 ? 지역의 문화행사 축제가 성공할려면 풀뿌리 동아리 단체를 활성화 시켜 민간주도형으로 전개되어야 하지 않는가 !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