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목도리와 털장갑, 빨갛게 타오르는 장작불, 파 송송 썰어 넣은 뜨끈한 국밥, 사랑하는 사람의 따스한 품…. 온기(溫氣)가 그리운 계절이다. 정신없이 달려와 몸도 마음도 지친 한 해의 끝자락. 지난 시간을 견뎌온 스스로를 위로하고 고마움을 표시할 선물로 무엇이 좋을까. 따끈한 물속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고 주변의 맑은 풍경을 감상하며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떨까. 국내 온천 명소로 달려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보자. '소확행'(일상에서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 뜨거운 짠물 속에서 바다를 감상하다
인천 강화군 석모도에는 미네랄온천이 있다. 바람과 눈과 비를 고스란히 맞닥뜨려야 하는 노천온천이다. 하지만 따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바람과 눈비는 오히려 반가운 존재가 된다. 바람은 신선함을, 눈비는 낭만을 선사한다. 눈 앞에 펼쳐지는 서해와 조그만 섬들이 이룬 서정적인 풍경은 마음마저 평온하게 한다. 비단결처럼 고운 노을도 일품이다.
인천 강화군 석모도 미네랄온천 전경.
석모도는 추억의 공간이다. 강화도 외포항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깝지만, 예전 그곳은 여객선을 타야만 닿을 수 있었다. 여객선이 끊기면 오도 가도 못 하는 곳이어서 뭇 연인의 심장을 콩닥거리게 하는 섬이기도 했다.
서정성 짙은 서해를 품은 해안과 맑은 풍경 간직한 보문사는 단연 최고의 명소였다. 10여 분간의 뱃길에서 갈매기 떼에게 과자를 던져주는 낭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석모대교가 개통하면서 30년간 운행하던 여객선도, 그 시절의 낭만도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석모도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뒤적이며 외포리 선착장을 지나 길이 약 1.4㎞의 석모대교를 건넜다. 석모대교와 석모도의 도로로는 대형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끊임없이 지났다. 석모대교가 개통되고 최근 석모도가 명소로 떠올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다.
 
◇ 동남아 휴양지처럼 이국적인 온천
섬을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 서쪽 해안으로 접어들자 드넓게 펼쳐진 서해를 배경으로 최근 최고의 명소로 떠오른 석모도 미네랄온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동차로 빼곡한 넓은 주차장이 이곳의 높은 인기를 증명했다. 온천 입구 족욕체험장에서는 관광객이 삼삼오오 모여 족욕을 즐기고 있다. 족욕체험장은 보문사를 방문했거나 해변 명소를 오가는 관광객이 잠시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온천 내부와 동일한 온천수가 담겨 있다. 필요한 것은 단지 수건뿐이다.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

매표소에서 온천복을 빌린 후 안으로 들어섰다. 개별적으로 수영복이나 래시가드를 가져와 착용할 수 있지만 물을 많이 머금는 면 소재 셔츠와 바지는 금지된다. 조그만 실내탕에서 몸을 씻고 반바지와 반소매셔츠 온천복으로 갈아입은 후 실내를 벗어나자 탁 트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동남아 휴양지의 고급 리조트를 찾은 듯 이국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다. 갈색 목재가 바닥에 깔려있고 물이 가득 담긴 탕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이곳에서는 지하 460m 화강암반에서 용출하는 수온 51도의 원수(原水)를 소독이나 정화 없이 사용한다. 파이프를 통해 탕에 도착한 물은 43도. 대중목욕탕의 고온탕 온도가 39~41도이므로 꽤 뜨거운 편이다. 하지만 차가운 겨울이라면 이만큼 좋은 온도는 없을 것 같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노천 온천의 매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노천탕은 총 15개가 있다. 누우면 하늘을 마주하는 탕, 눈과 비를 막아줄 천장이 있는 탕, 온실처럼 천장과 사방이 유리로 막힌 탕, 수영장처럼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탕이 있다.
 
◇ 묵은 피로 녹이는 뜨거운 기운
탕마다 사람들이 들어앉아 온천욕을 즐긴다. 어린아이부터 젊은 커플, 부부,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가 뒤섞여 있다. 나이, 성별, 사는 곳은 모두 달라도 탕마다 이야기꽃이 흐드러진다. 여기저기에선 "어~시원하다!" "좋~다!"는 자그만 탄성도 흘러나온다.
우선 젊은 커플들이 노닐고 있는 대형 온천탕으로 향했다. 이곳은 수온 30도의 저온탕. 물속에 몸을 담그자 추위를 가시게 하는 온기가 전해진다. 겨울철 물놀이장에 온 느낌이다. 젊은 커플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물속에서의 데이트를 즐긴다.
부러운 마음을 애써 감추고 물속에서 나오자 차가운 해풍이 젖은 송곳처럼 파고들며 몸을 잔뜩 웅크리게 한다. 종종걸음으로 온탕으로 자리를 옮겨 재빨리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 소리가 저절로 나오고 이내 뜨거운 기운이 퍼진다. 바닷바람은 더는 차갑지 않다. 그저 상쾌할 뿐이다.
물속에 한참을 머물자 나른한 기운이 감돈다. 한 해 동안 쌓인 피로가 뜨거운 온천수에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기분이다. 선베드에 누워 발갛게 데워진 몸을 식히며 휴식하는 맛도 그럴싸하다.
노천 뒤로는 낙가산이 울긋불긋 늦가을의 정취를 선사하고, 앞으로는 서해가 푸근하게 펼쳐진다. 해안선을 따라 난 갯벌 한쪽의 선착장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도 볼 수 있다. 옥상전망대에 오르면 노천탕 전경 뒤로 펼쳐진 서해와 갯벌, 섬이 이룬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 온천수는 칼슘, 칼륨, 마그네슘, 스트론튬, 염화나트륨 등이 풍부하다. 혈액순환을 돕고 관절염, 근육통, 아토피 피부염, 건선 등에 치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은 투명하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지만 마시지 않는 게 좋다. 바닷물처럼 무척 짜다. 석모도 미네랄온천 이용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첫째·셋째 화요일에는 쉰다.
 
◇ 천년 사찰과 치유의 숲
석모도 미네랄온천 바로 뒤편 낙가산 발치에는 보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양양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4대 해수 관음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석모대교가 개통하며 방문객이 대폭 늘었다고 한다.
산문을 지나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면 보문사 경내로 이어진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초입의 오백나한상. 부처상을 중심으로 반원형 극장에 도열한 나한상들의 얼굴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표정이 모두 달라 흥미롭다. 미소를 띤 나한,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나한, 하늘을 보며 딴청을 부리는 나한도 있다. 오백나한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어 더는 윤회하지 않는 성자들을 말한다.
보문사 오백나한상.
와불전에는 동남아에서나 볼 수 있는 누워 있는 부처상이 있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바치고 눈을 지그시 감은 와불상은 너비가 13.5m, 높이가 2m에 달한다. 수령 약 700년의 향나무, 조선 후기 승려들이 취사용으로 사용한 직경 69㎝의 맷돌도 볼 수 있다. 극락보전과 관음전 사이의 계단을 20여 분 오르면 일명 '눈썹바위'가 있다. 처마처럼 바위가 위를 덮은 바위 벽면에는 높이 9.2m의 마애석불좌성이 양각돼 있다.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이화응 스님과 보문자 배선주 주지가 함께 조각했다고 한다.
석모도수목원 가을 풍경.
보문사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석모도수목원도 들러볼 만하다. 강화군이 조성한 수목원은 푸른 녹음과 꽃,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돌탑 10여기가 있는 입구에서 맨 안쪽까지 20분 정도 오르막을 걸어야 하지만 풀무지원, 아이리스원, 고사리원 등을 지나 다양한 수목을 감상하며 산책할 수 있다. 온실에서는 자금우, 바디나물, 비파나무, 물토란, 각종 선인장 등을 볼 수 있다. 수목원 바로 옆에는 객실 28개가 있는 석모도자연휴양림이 있다.
섬에서는 해안 방문도 빼놓을 수 없다. 최고의 해변 명소는 민머루해수욕장. 길이 1㎞ 정도 해변에 서면 서해가 드넓게 펼쳐진다. 인적 드문 해변에서는 허리까지 물속에 잠긴 사람들이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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