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리 시인의 치매행 완결판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홍해리 시인과 전선용 시인

4호선 수유역 8번 출구에서 시장통을 지나가니 ‘우리詩진흥회’ 사무실 앞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홍해리 시인은 충북 청원군에서 1941년에 8남매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 후, 세광고와 청주상고에서 9년간 교사로 근무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우이동에 정착했다. 1986년 우이동에 살던 이생진, 임 보, 채희문, 신갑선 시인과 ‘우이동시인들’이라는 동인을 결성, 1987년부터 봄가을로 동인지를 1999년까지 25집을 간행했다. 이 모임이 현재의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의 모태가 되었다. “널 관통하는 총알이 아니라 네 가슴 한복판에 꽂혀 한평생 부르르르 떠는 금빛 화살이고 싶다 나의 시는”이라면서 서울 강북의 우이동에 정착한 우리詩진흥회 이사장과 만남은 전선용 시인이 주선했고 함께 간단한 반주를 겸한 저녁 시간까지 동행했다.

시 전문지 월간 ‘우리詩’는 강북구청에서 발간비 일부를 지원받지만, 자발적인 후원 회원 150여 명의 귀중한 쌈짓돈이 귀중한 자산이다. 이번 2018년 11월호가 통권 365호이다. 1987년 이래 지금까지 31년 동안 단 한 번도 결호가 없었단다. 매달 30여 명 시인의 신작 시와 평설, 시 에세이, 한시한담은 물론 신작 소시집, 테마 소시집까지 편집 내용도 아기자기하고 옹골차다. 판권의 편집진만 보더라도 무게감부터 상당하다. 편집고문 이생진, 김석규, 조병기 시인이 지붕이라면 발행인 홍해리, 편집인 임 보, 편집주간 나병춘 시인은 대들보 역할을 하는 원로급이면서도 현역으로 뛰는 바지런한 일꾼들이다. 여기에다가 편집장 방수영, 편집위원 여 연, 유 진, 이대의, 이동훈, 장수철, 전선용, 차영호, 채 들 시인 등이 듬직하게 큰 기둥과 서까래가 되어 ‘생명과 자연과 시를 가꾸는 우리詩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행복이 넘치는 시인들의 집이다.

홍해리 21번째 시집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우리詩의 중심은 단연 홍해리 시인이다. 홍 시인은 1961년 시집 ‘투망도’를 내며 등단, 개인 시집만 해도 이번 시집이 21권째이며 시선집 3권이 더 있다. 칠순도 중반을 넘어선 연세지만 편집이나 행사에는 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홍 시인의 ‘치매행’ 연작시는 2015년 1번에서 150번까지를 엮어 황금마루에서 펴냈고, 지난해에 151번부터 230번까지를 도서출판 움에서 ‘매화에 이르는 길’로 펴낸 바 있다. 홍 시인의 아내는 8년째 치매를 앓고 있다. 교직에서 명예퇴직하고 자식들까지 잘 키워 출가시키고 이제는 둘이서 오순도순 사는가 싶었는데 치매가 왔다. 홍 시인은 치매를 매화에 이르는 길이라고 비유한다. 홀로 매화의 길을 가는 아내가 안쓰러워 요양원이 아닌 자택에서 손수 병구완 중이다. 그렇게 아내를 지키면서 쓴 시가 무려 330편이다. 이번에는 231번부터 330번까지의 100편을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라는 이름으로 엮었다. 치매와 관련한 연작시는 이것으로 마감하겠단다. 이 시집이 ‘치매행’의 완결판인 셈이다. 이 시집을 읽노라니 아내를 지켜보는 지아비의 심정이 작품마다 절절하다 못해 뼈에 사무친다. 진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다. 이번 시집의 속지 첫 장에 아내를 꼭 안고 있는 애잔한 모습의 삽화가 자꾸 눈에 밟힌다. 홍 시인을 너무 존경하고 사랑해서 아예 가까이서 보좌하는 전선용 시인이 그린 작품이다.

더 긴말을 쓴들 사족일 뿐이다. 시집의 끝에 ‘간병 일지’까지 부록으로 실었다. 3개월마다 약을 타러 갈 때 담당 의사에게 건네준 참고자료란다. 시 치매행 262번 ‘죄받을 말’을 홍 시인과 같은 마음으로 낭송하며 이만 총총.
“아픈 아내 두고 먼저 가겠다는 말 / 앓는 아내를 두고 죽고 싶다는 말 // 하지 말아야 하는데 / 해서는 안 되는데 // 내가 왜 자꾸 이러는지 / 어쩌자고 점점 약해지는지 // 삶의 안돌이 지돌이를 지나면서 / 다물다물 쌓이는 가슴속 시름들 // 뉘게 안다미씌워서야 쓰겠는가 / 내가 지고 갈, 내 안고 갈 사람.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도서출판 움, 176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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