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문 성남시 분당구 이매2동장

해마다 11월 이맘때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 있다. 아니 있었다. 이른 바 수능시험 날에 닥쳐오는 추위, 우리는 그걸 보고 ‘수능한파’라고 부른다.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면 수험생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부모를 비롯한 온 가족 모두,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가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다. 가슴도 쪼그라들며 마음도 으스스한데 날씨마저 춥다면 말해 무엇하랴!

“수능이 치러지는 15일은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전국이 대체로 맑은 날씨를 보이며 평년보다 따뜻한 기온분포를 보일 것”이라는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 예보와 “2019학년도 수능일인 올 11월15일 목요일은 전국이 맑거나 구름이 조금 끼는 대체로 맑은 날씨가 되겠습니다. 비가 내리는 곳은 없겠으며, 바람도 강하지 않고 기온도 크게 춥지 않아 시험 응시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능일 전국 기온은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는 기상청의 예측에 힘입지 않더라도, 요즈음 우릴 놀래키는 이변과 같은 날씨를 미루어 보지 않아도 수능한파는 없을 것이라는게 나의 예견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십구만 사천구백이십사 명의 수능 응시생이 가슴을 쭉 펴고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추위가 없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른 바 학력고사 세대이다. 내가 시험을 보기 1년 전 부터 대입 본고사 제도가 폐지되고 학력고사 제도가 시행되었다. 학력고사는 필기시험 320점과 체력시험 20점으로 구성되었는데 시험이 끝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각 일간신문에 S대 ㅂ과 부터 이름조차 낯선 신생학교에 이르기까지 커트라인 기준이 여러 장을 장식하였다. 가채점한 학력고사 점수를 가지고 온 집안 식구가 달라붙어 수험생이 합격 가능한 학교와 학과를 고르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그 해 학력고사는 전년도 시험이 어렵게 출제된 이후 난이도 조정에 실패하여 무척 쉽게 출제된 것으로 분석되었고 300점 이상의 고득점자가 전년도와 비교하여 8배가량 많게 배출되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300점 초반의 고득점자는 S대 입시에 많이 낙방하게 되는데 필자의 동창생도 그 중의 한명이었고 그로 인해 그 친구는 이후의 인생살이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면 지금까지도 측은한 마음이 든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닌 필자는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야 비로소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생각보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온 편이라서 동일계 진학 가산점을 부여받아 공대에 합격하였다. 하지만 그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비밀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는 시험과 관련한 징크스가 있다. 그것은 고입과 대입시험에서 똑같이 나타나는데 시험 첫 시간의 악운이다. 사실 어릴 때부터 멀미를 심하게 하였던지라 버스를 타게 되면 꼭 주머니에 넣어가는 것이 있었다. 비닐봉지 말이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그 날도 1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하는데 버스에 탄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교복입은 여학생 앞에서 일을 치르고 만다. 기진맥진하여 도착한 시험장에서 급기야는 시험지를 내팽개치고 잠이 들고 감독선생님이 흔들어 깨우는 어이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시계를 보니 남은 시간은 17분, 그렇게 첫 시험을 치렀다. 대입 학력고사에서도 여러 사정으로 전 날 잠을 잘 수 없었고 그렇게 도착한 수원의 시험장에서도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첫 시간을 치른 것은 잊을 수 없다. 게다가 그 날은 추위까지 더하여 찌든 가슴을 더욱 쪼그라들게 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어쨌거나 그나마 수능한파를 녹일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애끓는 마음과 후배들의 선배 사랑 온도이었으리라. 나 또한 가장이 되어 두 아이를 시험장에 보내놓고는 온종일 애가 끓었으니 말이다. 시험장의 교문과 담장에 커다랗게 내걸린 후배들의 마음은 또 어떤가? 선배 사랑 열기는 뜨거웠다. 그 사랑온도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수험생들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도 컸으리라. 올 해 성남시 아름마을의 이매고등학교에 그 선배사랑 온도를 가름할 수 있는 현수막, 아니 그 가늠자가 내걸렸다. “컴싸 가는 곳마다 정답 되게 하소서!”

지난 9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대입제도개선 연구단’ 출범식을 갖고 교육 현장의 교사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학생과 학부모 등 다양한 의견은 물론 세미나와 포럼, 공청회 등 다양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새로운 대입 제도안과 교육 혁신안을 내년 8월까지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교육계의 기득권을 위한 개혁안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을 진정으로 위하는 개혁안,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해소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대입 개편안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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