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결말이 대단히 충격적인 영화였다. 시골길에서 한 청년이 오랜 기다림 끝에 44번 버스를 탄다. 여성 버스 기사가 모는 버스였다. 얼마 가지 않아 2인조 강도가 버스에 타더니 승객들의 금품을 빼앗았다. 강도들은 젊은 여성 기사를 풀밭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청년이 막아보려 했지만, 흉기를 가진 강도에게 허벅지를 찔렸다. 강도들은 풀밭에서 일을 마치고 언덕 너머로 줄행랑쳤다. 다른 승객들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 돌아온 기사는 경멸하듯 승객들을 돌아본다. 절룩거리며 타려는 청년에게 타지 못하게 한다. “나는 도와주려고 했다”고 말했지만 여성 기사는 “그럼, 출발 안 한다”고 말했다. 어느 승객은 그의 짐을 창밖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렇게 출발한 44번 버스가 언덕 밑으로 굴러 기사와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어쩌면 모두 죽어도 싼 이들이다. 그래서 그 여성 버스 기사는 강도들과 맞선 청년은 태우지 않았다. 살만한 가치가 없는 승객들만 모두 데리고 지옥행을 택했다. 이 영화는 2001년에 제작된 ‘버스 44’라는 홍콩의 영화로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꾸며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다시 주목을 받은 11분 30초의 독립영화다. 요즘 돈 많이 긁어모은 ‘양 회장’이란 자가 부하직원의 귀싸대기를 때리는 폭행 동영상도 뒤늦게 폭로됐다. 그는 또한 어느 교수의 집단폭행 주모자였지만 검찰에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고 무혐의 처리되었단다. ‘엽기 행각의 끝판왕’이라는 그의 현재 직함이 한국미래기술(?) 회장이란다.

‘내 손톱 밑 가시가 남의 지랄병보다 아프다’고 했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다. 어떤 자리에 오르느냐에 따라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끼겠지만, 대부분 그 자리를 보전하기에 급급하다. 나약해 보이면 무시하고 공격하고 강하면 납작 엎드려 아부한다. 덩치가 작은 하이에나가 무리를 지어야 썩은 고기라도 잔뜩 먹을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역사책에도 수없이 등장하는 얘기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보신하는 토사구팽이 비일비재하다. 권력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해 부하직원에게는 무소불위하고 상위 포식자에게는 꼴값도 못하는 자들이 권력에 줄을 대며 그저 눈치만 보고 있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해야 할 일들은 재미없고 힘들고 지겹다. 그와 반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은 대부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더불어 큰돈까지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이권을 찾느라 눈알이 시뻘게진다. 그렇다. 실패하는 사람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질서 없이 순간의 필요에 따라 우왕좌왕한다. 더구나 초심을 잃고 몽니를 부렸다가는 요즘처럼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개망신의 쓴맛만 다시게 된다. 따라서 한때는 날아가는 새도 눈빛 하나로 떨어뜨렸다지만, 인맥의 힘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착각과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같잖은 능력이라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대한민국이 ‘엉망으로 돌아간다.’와 ‘제대로 가는 중이다.’로 방송과 언론마다 빙글빙글 돌려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아무리 센 정권으로 바뀐다고 한들 실제로 정치하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관료들은 옛날 옛적 바로 그 사람들이다. 관료주의로 완전무장한 공직사회의 고정관념은 절대로 깨지지 않는다. 오히려 알만한 그들이 외려 등쳐먹는 데 앞장선다. 달콤한 꿀이 나오는 권력자의 주변에는 단물 빨아먹는 진드기들이 득실거린다. 권력이 오래될수록 더 독한 진드기들이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진이 빠질 때까지 빨아먹는다. 그 새끼가 또 그 새끼를 치며 권력에 빌붙는 진드기들은 날로달로 번창한다. 속담에 ‘기와 한 장 아껴서 대들보 썩는다.’라고 했지만, 한두 장의 기왓장이 아니라서 아예 집채 왕창 무너지려는지 빙글빙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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