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새끼 염소가 우연히 담과 난간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 위에서 보는 세상은 새롭고 신비로웠다. 그때 먼발치에서 늑대 한 마리가 예전처럼 어슬렁거리며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간 늑대에게 불만이 많았던 새끼 염소는 분풀이로 늑대를 향해 큰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이놈, 늑대야! 날 한번 잡아보시지!”

느닷없이 새끼 염소의 놀림을 당한 늑대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이, 거기 꼬마야! 나를 놀리고 욕할 수 있는 건 네놈이 아니라, 바로 네가 서 있는 자리 때문이라는 걸 잊지 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누구든 무엇인가에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앉게 되면 그 자리에 부합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하지만 평소에 겸손하던 사람도 팔뚝에 완장을 채워주면 우쭐해져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오만해진다. 높은 직에 올라갈수록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초심만 버리지 않았다면 그 직을 걸고 얼마든지 행세해도 나무랄 리가 없다. 기왕지사 뭐 좀 해보겠다고 앞에 나섰다면 눈치코치 보지 말아야 한다. 예전부터 풍문으로 떠돌았지만, 모 국회의원의 결기로 밝혀진 사립 유치원 비리, 어찌 그곳뿐이랴. 사회 곳곳마다 부정부패와 비리, 아귀다툼으로 혈세를 빨아대는 빈대들이 우글거린다.

정치인은 자신을 선택한 나머지 국민을 위해 좋은 정책을 만들고 실천으로 옮기게 하고자 국민의 혈세를 쓰는 사람들이다. 선거전 때 애용하는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명 ‘머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주인으로 행세하는 정당이 있다. 두세 집단은 전국적으로 그 세력이 퍼져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권력이다. 따라서 머슴의 됨됨이보다는 그들의 세력을 믿고 ‘묻지마’ 선택으로 최선이 아닌 차선이 정치꾼 등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혈세를 받아 먹고산다고 모두 정치인은 아니다. 일단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으면 눈이 가자미처럼 옆으로 돌아간다. 때로는 정치인은커녕 정치꾼도 아닌 모리배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제 10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었다. 1952년 지방의원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를 실시했다가 5·16군사정변으로 1961년 중단, 1987년 헌법이 개정된 후 1991년 3월에 시·군·구·자치구의원 선거, 6월에는 시·도의원 선거로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이후 1995년 5월 지방자치단체장(광역, 기초)과 지방의회의원(광역, 기초)을 동시에 뽑는 4대 지방선거가 실시됨으로써 그야말로 ‘민선자치시대’가 열렸다. 이를 기념하는 날이었다. 대통령과 장관들 그리고 국회의원 299명과 17개 시·도 교육감과 광역단체장 17명 외에도 시장·군수 243명, 광역의원 794명, 기초의원 3692명의 머슴이 실제로는 지역별 우두머리이다. 그 머슴들의 밑에서 줄 대고 머슴의 머슴 노릇을 하는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의 ‘민선정치공화국’이다.

정치는 당연히 좋은 것인데 개중에 정치한답시고 껴든 한둘 때문에 나쁜 무리가 되어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과거에는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는데, 요즘은 대기업보다도 훨씬 조건과 대우가 월등해져서 생계형으로 뒤바뀐 지 오래됐다. 어떤 자리이든 영원한 자리는 없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첫머리에서 얘기했듯이 새끼 염소처럼 높은 데 좀 올라섰다고 으스대지 말 일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는 전철역 공중화장실 벽에 붙은 문구가 자꾸만 눈에 밟히는 시월도 간다. 한여름 무성했던 나뭇잎들도 벌겋게 혹은 누렇게 물들어 낙엽 되어 떨어진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쓸리다가 행인들의 구둣발에 무참하게 짓이겨 뭉개지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고위직들이야 좋았겠지만, 우리는 지난봄부터 지금까지 계속 겨울이었다. 지난 주일에는 추위를 몰고 온다는 비까지 내렸다. 없는 사람들은 더욱더 벌벌 떨어야 할 겨울이 바투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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