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은 1897년 7월 사형을 언도받고 8월 26일로 사형집행일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별사면으로 생명을 건진다.

사형을 면하고 살아나기까지는 두 번의 아슬아슬한 일이 있었다.

조정의 신하가 고종이 사형을 재가했으나 조선 관리가 ‘국모보수(國母報讐)’인 죄명을 이상하게 여겨서 고종에게 아뢰었다. 고종이 사형 집행을 정지시켰다. 사형 정지에는 전화가 한 몫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사형 집행일 삼일전 인천감리서에 전화가 개통됐다. 전화로 사형 집행 정지를 알렸기에 사형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사형은 면하였으나 일제의 눈치 때문에 석방이 되지 않자 백범은 탈옥을 결심한다. 1898년 3월 9일 밤 탈옥하여 수원, 목포를 거쳐 함평에 도착, 그곳에서 15일간 묵었다.

그리고 보성, 화순, 순창, 담양을 거쳐 올라와 충남 마곡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모든 세상의 잡념이 식은 재와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출가(법명: 원종(圓宗)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이면 예불법이며 천수경, 심경을 외우고 보각서장을 배웠다.

다음 해에 평양의 영천암의 주지가 되었지만 출가생활은 은신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므로 백범은 반년도 못되어 환속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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