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동상을 외롭게 해선 안된다

인천대공원의 백범 동상. 외진 곳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인천대공원에 있는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선생의 동상 이전이 최근 관심사가 됐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2018년 시의회 질의응답에서 시민들의 여론을 거쳐 김구 동상을 인천 내항으로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김구 동상 이전문제는 인천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무엇보다 인천대공원에 있는 동상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시민들이 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개항의 역사가 있고 김구 선생이 감옥 생활을 하고 항구 건설시 노역을 한 발자취가 숨쉬는 인천 신포동이나 항구 일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백범 김구와 인천을 연속물로 싣는다.

◆인천대공원 동상 이전 여론

2018년 8월 인천시의회는 박남춘 인천시장에게 "백범 선생의 독립운동과 연관성이 깊은 인천 만국공원이나 개항장 감리서 터 또는 내항 등으로 동상을 옮기고 광장을 옮기는 것에 대한 시장의 견해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박남춘 인천시장은 "내항으로의 이전은 시민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면밀히 검토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현재 만국공원(자유공원)은 맥아더 장군 동상과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등으로 인해 조성할 만한 부지가 협소하고 감리서 터는 이미 주상복합 건물이 조성돼 이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동상 이전 장소로 거론되고 있는 인천 내항은 백범 선생이 인천 감리서에서 수감생활 중 인천항 축조공사에 동원돼 고초를 겪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 내항 1·8부두에서는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으로 문화 혁신공간인 '상상플랫폼' 건립 사업 등이 추진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은 지난 1997년 인천대공원에 건립됐다. 당시 시민추진위원회(위원장 고 이회림 옛 동양제철화학 창업자)가 기금 7억원을 모금해 좌대 3.1m, 높이 2.8m 규모로 동상을 세웠다.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도 함께 세워졌다.

인천시는 백범 동상 이전 검토와 아울러 내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및 기념사업 추진단'을 구성, 인천 특성에 맞는 기념사업을 다양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박 시장은 "김구 선생 기념사업, 3·1운동의 역사적 장소에서의 기념식 등 100주년에 걸맞은 기념행사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구와 인천 인연

백범 김구는 생전 인천에서 두 차례 감옥 생활을 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후 귀국한 뒤 지방 가운데 인천을 가장 먼저 찾았다.

조선말인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소식을 듣고 분노한 김구는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했다. 이른바 ‘치하포사건’이다. 체포돼 그해 5월 13일 사형 선고를 받고 해주감옥에 수감됐다가 인천감영(인천감리서·현재 인천 신포동에 위치)으로 7월 26일 압송됐다. 당시 감리소는 인천이 개항장으로 붐비면서 개항과 외국인 관련 업무를 처리하던 관공서였다. 백범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바로 직전 고종 황제의 사형 집행 정지령이 내려지고 무기수로 감형되었다. 백범은 1898년 3월 9일밤 인천 감옥을 탈옥한다. 정문으로 당당히 빠져나왔다.

충청과 전라도서 숨어 생활하다 공주 마곡사서 잠시 승려 생활을 한다. 이후 1910년 11월 독립운동가 안명근이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하려고 자금을 모으다 관련인사 160여명과 함께 일본에 붙잡힌다. 이른바 안명근사건이다. 1911년 체포돼 서대문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1914년 인천감옥으로 다시 이감된다. 죄수번호는 55호였다. 이때 인천 인천항의 부두를 건설하는 축항공사(제1부두)에 동원돼 돌을 나르는 등 노동을 한다. 1915년 인천 감옥에서 가출옥한다. 이처럼 인천은 백범이 1919년 상해로 망명하기 이전까지 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곳이다. 백범에게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적 장소였다.

백범은 백범일지에 ‘인천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인천 개항장을 통해 유입된 신문물을 익히며 항일운동가로서의 사상을 정립했다’고 기록했다.

백범이 탈옥하기 전 인천 사람들은 백범을 구해야 한다며 탈옥을 도와주기 위해 실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탈옥시키기 위한 계획을 짰으나 백범이 미리 탈옥하는 바람에 실천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백범 김구는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 지방 순회를 할 때 인천을 제일 먼저 찾았다. 그만큼 인천을 남다르게 생각했다. 백범일지에는 인천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남다른 곳이라며 인천에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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