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년 첫 경기 지명… 대한민국 중심지

고려사에 등장하는 지명 '경기' (연합뉴스 제공)

올해는 행정구역으로서 '경기(京畿)'라는 지명이 생긴 지 1000년이 되는 해이다. 경기라는 명칭은 고려 때인 1018년 탄생했다. 경기도는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중심 지역이었다. 경기도는 2018년을 '경기 천년의 해'로 지정하고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도내 곳곳에서 문화·예술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1018년 개성 일대를 경기로

고려는 1018년 당시 수도였던 개성과 주변 13개현을 합쳐 경기라 칭한다. 경기라는 명칭의 첫 등장이다. 1390년에는 경기와 양광도를 합쳐 경기좌우도로 나뉜다. 조선 태종때인 1413년 좌우도를 통합해 경기도라 칭한다. 조선 중기인 1608년 경기도에 대동법이 시행된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광주 남한산성에 인조가 47일간 머무른 뒤 치욕의 항복을 한다. 조선 최고의 명군인 정조는 1796년 수원 화성을 완공한다. 조선말인 1895년 경기도는 잠시 사라진다. 일본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면서 조선에 전체적인 개혁의 바람이 불면서 행정 구역도 바뀐다. 경기도 일대가 여러 개로 나뉘어 한성부와 인천부, 개성부로 소속된다. 그러나 불편함이 컸던지 다음해 바로 경기도가 부활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한반도 중심부를 없애기 위해 서울(당시 경성부)을 경기도에 편입시킨다.

광복 후인 1946년 서울이 경기도에서 분리된다. 1949년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하고 수원군이 화성군으로 변경된다. 1950년 한국전쟁은 경기도를 두 동강냈다. 1963년 경기 북부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승격한다. 1967년 서울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한다. 당시 경기도에 속했던 인천이 끈질기게 도청 유치를 추진했지만 수원시민들이 똘똘 뭉쳐 경기도 대표도시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1973년 수도권의 대표적인 위성도시였던 성남 부천 안양이 시로 승격한다. 1981년에는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경기도에서 분리되고 광명 송탄 동두천이 시가 된다. 1986년에는 구리 평택 안산 과천이 시로 승격된다. 1987년에는 대선을 앞두고 경기도를 남도와 북도로 나누자는 분도론이 처음 등장한다. 이후 분도론은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지만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1989년에는 오산 시흥 군포 의왕 하남 등이, 1992년에는 고양이 시가 된다. 1995년 송탄과 기존의 평택시 평택군이 합쳐져 새로운 평택시가 탄생한다. 경기도였던 강화군과 옹진군이 분리돼 인천시로 편입된다. 1996년에는 용인 파주 이천, 1998년 안성 김포, 2001년 화성 광주, 2003년 포천 양주가 시로 승격된다. 2003년 경기도는 인구 1000만명을 돌파했다. 경기도는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이끄는 핵심 광역 자치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북 교류가 현실화 되면 경기도의 역할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고려·조선시대 사람도 '경기'로 모여들어

현재 경기도 인구는 1280여만명이다. 서울보다도 많아 전국에서 최다 인구 밀집지역이다. 경기도는 산업화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리는 동안 전국에서 가장 급격하게 인구가 증가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경기로 사람들이 몰려든 건 마찬가지였다. 당시 고려 인구는 약 250만∼300만명으로, 경기에 살았던 인구는 70만∼80만명으로 추산된다.

오늘날처럼 인구의 4분의 1이 경기에 집중된 셈이다. 조선 후기 때 경기 인구는 세금과 노역을 제공하는 16∼60세 남성을 뜻하는 '정호'(丁戶)를 기준으로 약 55만∼67만명이다.

정호에는 여성과 어린아이, 노인 등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면, 당시 총인구 약 1천만명 가운데 200만명 가량이 경기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도읍인 한양 주변이 편의시설이나 먹을거리 등이 다른 지방보다 풍부하다 보니 예부터 경기지역에 많은 인구가 거주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경기인'의 삶은 어땠을까. 이들은 다른 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논농사를 통해 생계를 꾸렸다. 왕실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는 위치적인 특수성 때문에 일대 왕릉 조성과 수리를 도맡는가 하면, 고위 관료의 별장이 많아 다른 도의 백성들보다 조세와 부역 부담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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