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무덥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아름다운 가을을 시기하는 찬바람은 옷장 깊숙이 걸어두었던 두툼한 겨울 외투를 꺼내 입게 한다. 그래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다들 그렇게 입고 나왔다. 그렇다. 뭘 해도 좋은 시월은 나들이하는 달이다. 추수도 웬만큼 마무리되었다. 금강산이나 백두산이 아니어도 나들잇길은 좋은 데가 많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 것이고…. 온 산과 들 그리고 골목길까지 빨강, 주황, 노랑으로 나뭇잎들은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만 지나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가보지 못했던 남이섬을 당일치기로 나들이 겸 다녀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1944년 청평댐을 만들 때 북한강 강물이 차서 생긴 내륙의 섬’이란다. 새벽 5시 반에 출발해서 용산역에 도착, ITX 청춘열차표를 끊었다. 옆지기가 가평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필자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주소지가 강원도 춘천시라서 고집을 부려 춘천역까지 끊었더니 옆지기는 가자미눈이 되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왜 삐졌슈?”하니 “가평역 끊으랬지요. 웬 춘천역.” “히히히! 아, 그래요? 바꾸면 되지요.” 얼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수수료가 400원씩 800원을 제하고 가평역 표로 바꾸어준다. 이래저래 옆지기한테 구박은 받았지만, 청춘열차 2층 칸에서 창밖 풍경에 좋다고 헤벌쭉한 나, 참 속은 좋다.

남이섬 입구에서 배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갔다. 초입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이름 그대로 남이섬은 나미나라공화국이다. 대통령은 없지만, 국기가 있고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을 위한 ‘무법천지법’이라는 헌법까지 있단다. 아니나 다를까. 나들이객 절반 이상이 남의 나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이섬은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더 환장하게 좋아한다는 섬이다. 물론 ‘겨울연가’ 드라마 주인공 배용준과 최지우 동상 앞에서 그들을 흉내 내며 사진을 찍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볼거리가 많아 봤던 데를 또 봐도 아까와 다르게 느낌이 온다. 우리처럼 형편이나 사정상 남의 나라로 나들이 못 가시는 분들께 정중하게 나미나라공화국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남이섬과 더불어 아침고요수목원도 꼭 추천하고 싶다. 남이섬으로 가는 입구에서 수목원 셔틀버스가 시간마다 운행해주니 불편함이 없었다. 아름답게 잘 조성된 수목원이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시원한 계곡까지 있다. 애써 가꾼 이들의 피땀이 꽃으로 단풍으로 우리들을 환하게 맞아준다. 수목원을 반 바퀴쯤 돌고 나니 2시가 넘었다. 점심도 못 먹고 월드콘과 자유시간 하나씩으로 허기를 달랬다. 부랴부랴 청평역으로 나왔으나 구미가 확 당기는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옆지기 눈치를 살피니 기어코 닭갈비를 먹고 싶은 눈치다. ‘춘천 하면 역시 닭갈비’ 아니던가. 에궁! 살았다. 청평에서 전철을 타고 남춘천역으로 고고! 점심도 거르면서 나 혼자 좋다고 끌고만 다녀 또 한 방 먹나 했는데…. 흰 가래떡이 있는 푸짐한 닭갈비와 막국수로 주린 배를 채우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옆 식탁에는 대낮인데도 소주와 막걸리병이 곁들여 있는데, 우리는 술을 안 하니 식대도 아주 저렴하게 나왔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정원문화박람회도 관람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바로 우리 동네다. 부천시청 앞 중앙공원과 미리내마을에 작가들이 장식한 정원을 보여주고 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딱 3일간이다. 정원을 꾸미느라 고생한 것에 비하면 행사 기간이 상당히 짧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행사가 끝나도 철거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둔단다. 작품들 앞에서 ‘시민정원사’ 자원봉사자들이 친절하게 안내와 설명을 곁들여줘서 마음 편히 잘 돌아보았다. 예쁜 사진도 많이 찍어주었고,

“여보! 처음으로 괜찮은 나들이였어요.”

오늘은 이상하게도 칭찬까지 하며 아주 후한 점수를 쳐준다. 이게 바로 행복 아니겠는가. 꼭 금강산이나 백두산이 아니더라도 경기도 지역만 돌아도 몇십 년은 걸릴 듯하다. 머뭇거리지 말자. 지금 당장 동네 뒷산에라도 우선 올라가자. 지금은 시월, 불타는 가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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