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비류가 문학산 일대 미추홀국 세워

▲ 문학산정상에서 바라본 인천 도심.
▲ 문학산정상에서 바라본 인천 도심.

백제때 대외 관문 역할… 고려때 왕비 7명 ‘7대 어향’

인구 300만 넘는 한국 3대 동북아 중심 도시로 성장

인천의 2000년 역사가 시작된 문학산 일대가 전면 개방돼 시민들이 편하게 문학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문학산 정상에는 역사관이 문을 열어 인천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인천의 거주 역사는 기원전 1세기경 고구려 왕자였던 비류가 인천에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된다. 비류는 미추홀(彌鄒忽·‘물의 마을’이란 뜻)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문학산성 일대를 도읍지로 삼는다. 지금의 문학산 일대가 인천의 발상지다. 인천은 이후 2000년간 역사를 이어오며 대한민국 3대도시로 성장한다. 동북아 중심도시로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성장가능성이 가장 큰 도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인천 2000년 역사를 2회로 나눠 싣는다.

◆백제 초기 대외 관문 역할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운 소서노(召西奴)는 주몽의 첫 부인이 아들 유리를 데리고 오자 자신이 낳은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하한다. 비류는 문학산성 일대에 미추홀국을 세웠고 온조는 한강 이남에 하남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했다. 문학산 일대에 비류의 유적으로 여겨지는 문학산성과 비류왕릉, 우물인 백제정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인천시사는 미추홀을 인천의 출발점으로 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엔 소서노는 졸본부여의 딸 또는 월군녀로 기록되어 있다. 졸본사람인 연타발의 딸로 우태에 시집가 비류를 낳고 주몽에게 시집갔다. 온조도 낳았다는 설도 있다. 부여왕 딸인지 아닌 지 여러 가지 설이 나돈다. 주몽과의 결혼은 고구려 건국의 필요성에 따라 혼인했을 가능성 크다는 학계의 견해다. 소서노를 ‘백제를 세운 건국의 어머니’로 대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비류가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죽자 미추홀은 한강일대(지금의 하남 위례)에 나라를 세운 백제에 통합된다. 백제 초기에는 대외 관문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유적지가 능허대다. 삼국을 거쳐 통일 신라 때는 수도인 경주와 멀어 주변적 위치에 머무른다. 인천은 고려 들어 핵심적인 지역으로 떠오른다. 고려의 수도인 개경과 가깝고 무엇보다 인천이 연고인 인주 이씨가문이 고려 시대 최고의 외척이었기 때문이다. 왕비 7명을 배출해 ‘7대 어향’이라 불릴 만큼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자겸이 난을 일으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는 해금 정책으로 인천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그 바람에 해안가에 위치한 인천은 오랫동안 주변부 위치에 머무른다. 조선시대 인천의 포구는 고려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조운제도로 인해 전국의 물자를 보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조운은 토지에 과세된 현물 세곡을 전국 각지에서 보관했다가 선박을 이용해 서울로 수송하는 것을 일컫는다. 만석동이라는 지역명은 서해와 남쪽에서 세금을 바치기 위해 바다로 올라오는 쌀 만석을 보관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인천은 조선말 강화도조약으로 1883년 개항 이후 일약 국제적 도시로 떠오른다. 이 때 인천의 중심부는 문학산 일대에서 제물포 일대로 옮겨간다. 인천은 한국 근대사의 고향이 되었다. 야구 축구 학교 교회 호텔 공원 등 오늘날 한국최초가 모두 인천에서 탄생했다.

◆'인구 300만' 글로벌 도시로

광복후 1980년대까지 지금의 중구 신포동 전동 송월동 북성동 일대가 인천의 중심지였다. 지금의 중구청 건물이 오랫동안 인천시청 청사였다.

인천은 광복후 1960년대 들어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맞춰 수도권의 관문 역할을 하면서 수출공업지역으로 성장한다. 부평과 주안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 자동차 제철 기계 정유 공장이 들어선다. 특히 부평공단에는 섬유와 가발 공장이 많아 수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주안에는 기계와 목재 단지가 조성된다. 1960년대 말 경인고속도로 등장으로 인천은 한층 발전했으며 전국에서 사람들이 인천으로 몰려들었다.

1970년 인천은 비약적인 성장을 한다. 경인철도가 복선화되었으며 경인전철이 완공됐고 내항에 갑문식 도크가 건립됐다. 인천항이 다시 한번 한국의 주요 수출항으로 올라섰다.

1985년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해 새로운 시대를 연다. 오랫동안 시골이었던 구월동의 남동구 일대가 크게 발전하면서 인천의 중심지로 자리잡는다. 1990년대 들어 한국과 중국이 국교 정상화로 인천은 중국과 주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인천은 글로벌 도시로 비상했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했고 2003년 최초로 경제자유구역이 들어서 송도 청라 영종도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2019년이면 인천신항이 개항한다. 바야흐로 인천은 하늘과 땅 바다에서 뻗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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