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92세 신재천씨 상봉후 '기약없는 이별'

남북 이산가족들이 2박3일을 만남을 가진 후 다시 기약없은 이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내가 차 가지고 가면 (개성까지) 40분이면 가. 왕래가 되면 배를 불리고 가는데…."

신재천(92) 씨는 22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북측의 여동생 금순(70) 씨에게 약과 봉지를 뜯어 접시에 올려주며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김포에 산다는 신 씨는 개성에 사는 여동생에게 "서로 왕래하고 그러면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먹이고 살도 찌우고 하고 싶은데. 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래"라며 기약없는 만남을 약속했다.

마지막 헤어짐의 순간이 혹시나 엇갈릴까 싶어 동생에게 "내가 타고 가는 버스는 8번, 8번, 8번 버스야"라고 여러 차례 알려줬다.

동생 금순씨는 "개성에서 김포 금방이잖아. 빨리 통일이 돼야 해"라며 애써 오빠를 안심시켰다.

이날 작별상봉장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은 만남의 징표를 건네고 사진을 찍으며 마지막 정을 나눴다.

문현숙(91) 씨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간 반지와 시계를 꺼내 북측의 두 여동생에게 채워줬다.

운신이 어려워 이번 상봉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북측 여동생의 선물을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한일(91) 씨는 북측 여동생 영화(76) 씨의 팔을 끌어당기며 전날 준 것으로 보인 시계를 잘 차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는 "잊어버리지 말고 차고 다니라"고 당부했다.

몸이 좋지 않아 전날 오후 단체상봉 때 참석하지 못한 김달인(92)씨도 이날 작별상봉에 참석해 북측 여동생 유덕(85)씨와 사진 촬영을 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두 남매는 주름 깊이 팬 손을 꼭 잡았다.

이날 북측의 한 보장성원(지원인력)도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테이블별로 가족들의 사진을 촬영해줘 눈길을 끌었다.

이 관계자는 '북측 가족들에게 사진을 뽑아서 보내주는 것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남북의 가족들이지만, 전화번호와 주소를 주고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양경용(89) 씨는 북측의 두 조카와 남과 북에서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조카들이 "통일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양 씨는 "그럴 것"이라고 착잡한 듯 짧게 대답했다.

김혜자(76)씨는 북측의 남동생 은하(75)씨에게 '서울시 구로구…'로 시작하는 자신의 주소와 집전화, 휴대전화 번호를 적은 수첩 메모를 찢어 건네며 동생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물었다.

김씨는 동생의 얼굴이 나온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면서 입맞춤을 하며 애틋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서진호(87) 씨와 북측의 두 남동생 찬호(74), 원호(63) 씨도 서로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줬다.

65년 만에 가계도를 새로 써 내려간 가족들도 적지 않았다.

독고란(91) 씨의 동행한 아들은 아버지 대신 A4 용지에 가계도를 그리며 북측 가족들에게 이름과 나이를 일일이 확인했다.북측의 두 조카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가계도를 완성해 나갔다.

북측의 큰형와 만난 이수남(77) 씨는 형과 동행한 북측 조카 명훈(50) 씨에게 자녀들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다.

이씨는 취재진에 "만나 보니 다들 건강하시고, 조카가 네 명이더라"며 "사는 동안 기억하려고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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