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완 편집위원

언젠가부터 우리는 복잡한 사회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의 질을 높이려고 웰빙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과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으로, 자연속으로 찾아 걸으며 힐링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옛길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그중 하나가 2009년부터 조성된 삼남길은 조선시대의 옛 삼남대로를 원형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도보 여행자들이 자연과 문화를 느끼며 걸을 수 있도록 문화탐방로로 조성되었다,

삼남대로는 조선시대 한양에서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도)으로 가는 대로이다.

한양 도성에서 남대문을 지나 삼남지방으로 가는 간선도로의 하나였다.

1843년 『진위읍지』를 살펴보면 중밋오뫼(오산지역) - 진위 – 갈원 – 소사평 – 천안삼거리 나오고, 신경준의 『도로고』에는 오산신점 – 청호역 – 진위 – 갈원 – 소사 – 아교천 – 성환역으로 나오고 있다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에서는 수원별로(水原別路) 노량진-시흥-안양행궁-수원행궁-건릉, 충청수영로(忠淸水營路) 소사점-평택-충청수영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교통로에 반드시 역(驛)과 원(院)을 설치하였다. 진위현은 삼남대로가 지나는 요충지면서 충청대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으로 예로부터 역(譯)과 원(院)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진위현에 있었던 원으로는 ‘장호원’(진위면 신리) ‘이방원’(진위면 갈곶리) ‘백현원’(白峴院 장안동과 동막 사이의 고갯길) ‘갈원’(葛院 칠원동) 등이 있었으며, 역으로는 수원부에서 세종 때 진위현으로 이속된 ‘청호역’(오산시 청호리)이 있었다, 청호는 산과 숲이 우거진 곳에 맑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마을명이다 지금은 택지개발로 사라졌다. 견산리(見山里) 마을에는 고구려 때의 토성이 있었고, 성에 견적대(見敵臺)라는 망루가 있어 사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진위관아의 옥사가 있다고 하여 옥거리라고 불려진 적이 있었다. 삼남대로 평택구간이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길이 있고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전국에서 유일한 지역이기도 하다. 평택은 한남정맥의 남쪽 금북정맥의 서쪽에 위치하며 지형적으로 비교적 평탄한 평야지대로 이뤄져 있다. 산줄기는 무봉산(舞鳳山) 덕암산, 불악산, 함박산, 남서부의 고등산(高等山) 마안산(馬鞍山) 등 낮은 구릉성 산지들이 이어져 있고, 물줄기는 안성천(安城川)과 진위천(振威川)이 동쪽에서 발원하여 중앙부를 관통하며 평택평야를 적셔주고 서쪽으로 흘러 아산만을 거쳐 서해로 흘러 들어드는데 안성천은 삼한시대에는 웅천강(熊川江), 진위천은 장호천이라고도 불렀다. 그대로 둘레길을 조성해도 손색없는 자연무형문화유산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진위지역 삼남대로 주변에 배경으로 내려온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가 많다. 조선시대 세종때 좌의정을 지낸 고불 맹사성이 이곳을 소를 타고 오는 노인을 수령들이 한낯노인으로 알고 박대하였는데 그가 맹사성임을 알고 달아나다가 인장을 연못에 빠뜨렸다는 인침담의 전설과 녹사(綠事)인 젊은이와 공당 문답을 나눈 곳이 백현원 이었다는 이야기가 『진위읍지』에 실린것과 『춘향전』에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가는 길 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들판이 있는 곳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소사평(素沙坪)으로 불리던 곳이 있다, 소사평이라는 지명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직산, 평택 및 안성의 경계부에 표기되어 있다. 지금의 소사동과 용이동 부근이다, 이 지역은 일제시대까지 서해안 바닷물이 들어온 갯벌이었고 지금도 주변에 조개터라는 지명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되풀이 되었던 곳이다.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마귀(麻貴)가 군사들과 함께 원숭이를 이끌고 와서 이 들판에서 왜적을 혼란에 빠뜨려 크게 승리하였다. 또한 1894년(고종 31) 청일 전쟁 당시에도 이 들판 인근에서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인 곳이다

조선후기 양성현 구룡동면 지역.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소사리에 송전·자기촌·동역리·서재곡을 통합해 안성군 공도면 소사리(동)라 했다. 1983년 평택군 평택읍에 편입됐다.

필자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2가지이다.

하나는 지금 평택에서는 소사벌단오제, 평택문화원에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의 제호가 소사벌이다, 이것뿐인가 평택예총에서 매년 개최되는 예술제가 '소사벌예술제'이다. 소사벌이 어떻게 평택을 대표할 수 있는 용어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다시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평택현의 본 고장은 팽성이 아니던가.

두 번째는 진위의 지금은 어떠한가? 동쪽은 경부고속도로, 서해쪽은 경부철도와 1번국도가 가로질러가는 이곳에 한가운데로 서울에서 내려오는 동부고속화도로가 지나게 된다고 한다. 국가적 도시기반 개발과 지역의 균형적 개발은 당연하겠다.

이유가 어찌됐건 천년을 지켜온 지역을 두동강으로 나누면서 개발이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지역의 정서에 맞을까, 다른 대안은 없을까?.

오산시 전지역은 지중화 도로로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도 지중화 도로로 하는 등 다른 대안을 살펴보는 것을 건의해본다, 심히 걱정이 앞선다. 지역의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넓은 도로가 천년을 지켜온 자연적 지역을 하루 아침에 없어질 위기에 처해 지는 것이다.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묻고 싶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