祝融威勢抱爐同(축융위세포로동)

 

欲訪淸陰意思通(욕방청음의사통)

 

勝畵岳樓消世慾(승화악루소세욕)

 

講文鄕校守儒風(강문향교수유풍)

 

南山樹末朝暾白(남산수말조돈백)

 

漢水帆頭夕照紅(한수범두석조홍)

 

眺望名區詩興溢(조망명구시흥일)

 

優遊墨客詠無終(우유묵객영무종)

 

여름 신의 위세에 화로를 안은 듯하니

 

맑은 그늘 찾고자하는 의사가 통했다네.

 

그림 같은 소악루는 세욕을 사라지게하고

 

글 외우던 향교는 유교풍속 지킨다오.

 

남산의 나무 끝엔 아침 해가 밝아오고

 

한강의 나룻배엔 석양빛이 붉었다오.

 

명승지를 바라보니 시흥이 넘쳐나니

 

노니는 시인들은 읊조림이 끝이 없네.

 

 

 

 

 

* 위 시는 2018년 7월 서울 양천향교 뒷산의 소악루에서 린사한시학회 회원들의 시회에서 지은 시이다.

 

* 시어 祝融 = 중국의 옛 전설에 나오는 여름과 불을 맡은 신.

 

岳樓 = 소악루는 1737년(영조 13)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李楡, 1675~1757)가 경관과 풍류를 즐기기 위하여 자신의 집 부근 옛 악양루 터에 지었다. ‘소악루’란 중국 동정호의 웨양루[岳陽樓] 경치와 버금가는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으로, 당시 이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한 눈에 보이고, 탑산, 선유봉 및 드넓은 한강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등 진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특히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이곳 현령으로 있을 적에 그린 산수화 <경교명승첩>에서 당신의 경관을 볼 수 있다.

 

鄕校 = 양천향교

 

양천향교는 서울에 유일한 향교로서 조선 태종 11년(1411)에 처음 지었으며, 최근인 1981년에 전면 복원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서명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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