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이즈하라 중심도로 곳곳에는 조선통신사가 경유했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최익현은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시폐 4조’ 등 대원군의 실정과 권력욕을 비판하는 상소를 잇달아 올려 대원군 10년을 무너뜨렸다. 강화도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도끼를 들고 광화문앞에 꿇어앉아 조약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단행되자 최익현은 ‘내 목을 칠지언정 내 몸의 터럭 하나도 건드릴 수 없다’며, 상소를 올려 항일척사운동에 앞장선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을 때도 상소를 올려 강하게 맞섰다.

최익현은 이후 상소투쟁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여기고 무력에 의한 항일의병운동에 나선다. 1906년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펼치다 조선군에 붙잡혔다. 일본군에 넘겨져 대마도로 유배된다. 그는 애국지사이자 의병장이었으며 위정척사운동 선봉장이었다. 요즘말로 하면 대쪽같은 꼿꼿선비였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