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심청상

심청전의 인당수(印堂水)는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백령도는 중국과 왕래하는 중간 기착지로 중국인 왕래가 빈번했던 곳이다.

광해군 때, 백령도에 귀양 왔던 이대기(李大期)가 쓴 백령도지(白翎島誌)를 살펴보면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에는 북쪽과 서쪽에서 흐르는 조류가 만나 서로 부딪쳐 소용돌이를 이루어 물살이 매우 세고 험한 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때 물살에 휘몰려 배들이 자주 침몰됐다고 한다.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은 항해의 안전을 위해 항시 주의를 했고 목숨을 걸고 바닷길을 오가며 무역을 했던 중국 상인들은 두려움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살펴보면 백령도에 관한 자료로 진성여왕과 거타지 설화가 있는데 ‘배가 곡도(백령도의 옛 이름)에 이르니 풍랑이 크게 일어 10여일을 묵게 되었다. 양패공(良貝公)이 이를 근심하여 점을 치게 했는데 섬에는 신지(神池)가 있으니 제사를 지내면 좋겠다 하여 못물에 제물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길도 넘게 치솟았다’고 한다.

문헌의 신지는 바로 연화리의 연지(蓮池, 연꽃이 피는 연못)로 과거에는 그 넓이가 수만 평이었으나 지금은 농지로 변하였고 자투리 땅에 미꾸라지 양식장을 만들었는데 1996년 8월 연꽃 또한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 후 환생하여 연꽃을 타고 오다가 조류에 떠밀려 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증명하듯 백령도와 대청도 사이에 한 송이 연꽃처럼 떠 있는 연봉(連峰)바위가 있는데 인당수 조류의 흐름이 신기하게도 연봉바위 쪽으로 흐르고 있다.

백령도에 가면 심청각을 비롯하여 연화리, 연봉바위, 연꽃마을 등 심청전과 관련한 장소들이 있어 마치 심청전의 세계에 들어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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