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더위 때문에 염소 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가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도 온 나라가 펄펄 끓는 가마솥이다. 이번 달 말과 8월 초는 다행히 휴가 기간이다. 요즘 폭염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 콘크리트 고층 빌딩과 길바닥에서 내뿜는 열기가 하늘로 오르지 못한 도심은 이른바 열돔 혹은 열섬 현상이 반복된다. 한낮의 최고 온도를 열흘째 계속 갈아치우는 중이다. 에어컨 없이 사는 사람 별로 없겠다. 저수지까지 덮은 태양광발전소는 신나게 돌아가는 걸까? 이러다가 폐쇄한다던 원자력발전소를 훨씬 더 가동해도 전기가 모자랄 판이다.

창문이라도 열라치면 바깥의 뜨거운 열기가 잽싸게 안으로 들어온다. 그 틈을 노려 헬리콥터처럼 쒜엥! 하고 쳐들어와 날카로운 침으로 붉은 피를 빠는 모기라는 놈의 공격도 장난이 아니다. 날이 가문 탓에 몇 마리 남지 않은 이놈들 독기가 극에 달했다. 모기는 알을 밴 암컷만 사람을 공격한단다. 몸속에서 알을 키우는 데 필요한 단백질과 철분을 보충하기 위해 목표를 찾으면 죽어라 공격한단다. 검불처럼 연약한 침이 가마솥에 구멍도 뚫는 힘을 가졌다니 참으로 놀랍다.

푸른 소나무 다섯 그루가 멋들어지게 서 있는 아파트 앞에서 경비실에 근무하는 B 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봄부터 내게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했었다. 명색이나마 조경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탓에 때로는 전문가가 되는 양 소나무 가지치기도 시범했던 적이 있다. 그는 지난달 중순쯤에 아삭이고추 모종을 솔밭 아래에 심었단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비실비실 자라지도 않고, 이미 두 그루는 뿌리까지 썩어 죽었단다. 물론 남은 세 그루가 억지로 자라 하얀 꽃망울 몇 송이를 달고 있으나 아예 기대할 수 없는 지경이다.

같이 근무하는 K 씨도 스티로폼 빈 통에 청양고추 모종을 얻어 두 그루만 심었단다. 온종일 볕이 잘 드는 남향의 초소 모퉁이에 놓고 별로 손도 보지 않았건만 어찌나 잘 자라는지 가운뎃손가락만 한 크기의 고추가 주렁주렁 열려 곧 따먹어도 되겠다. B 씨가 볼멘소리로 내게 묻는다.

“내 고추는 퇴비도 듬뿍 넣고 갈아엎었고 땅도 널찍한데, 왜 안 크지요?”

당연했다. 그곳은 잡초조차 자라지 못하는 응달이다. 소나무 그늘 탓에 볕이 들 리 없으니 고추가 아니라 가지, 토마토조차 자랄 수 없는 환경이다. 큰 나무 덕은 못 봐도, 큰 사람 덕은 본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든지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개도 안 먹는 돈 때문에 사람 사는 세상이 연일 시끌시끌하다. 어제 아침에는 5천만원 때문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한 이도 있다. 모기처럼 달라붙는 등쌀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과거에도 바위 위에서 뛰어내린 전직 대통령도 있었다. 물론 그 뒤의 전직 대통령들은 안전을 위해서인지 모두 독방에 격리해 놓았다. 정작 원인 제공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애먼 사람들만 죽어난다. 일해봤댔자 소득이 매양 거기서 거기인 평범한 우리들 생각으론 기막힐 따름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는다. 금배지들은 물론 신임 장관들도 갈팡질팡 우왕좌왕이다.

국민이 낸 혈세로 일하는 사람들은 정권이 만드는 그늘에서 너나없이 광대놀음에 빠져 눈까지 뒤집힌 모양이다. 날이 뜨거워서가 아니다. 돈독으로 얼굴들이 벌개졌다. 아버지 시대에는 땅이 곧 돈이었다. 땀 흘려 일한 만큼 대가도 따랐고, 필자 때는 돈이 돈 버는 시대였다. 재벌은 계속 재벌이고, 영원한 직원이라지만 그런대로 만족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변했다. 줄만 잘 서면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데가 정치권이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12년 이상 의원직을 유지해야 연금을 탄다는데, 우리나라는 3개월만 의원직을 유지하면 된단다. 물론 정치권은 변함없이 그 나물에 그 밥인 노거수(老巨樹)들이 버티고 있어 늘 그늘이다. 아삭이가 아니라 청양고추라도 그런 그늘에서는 자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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