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오늘은 제70주년 제헌절이고 초복(初伏)이다. 언제부턴가 제헌절이 휴일에서 슬그머니 빠졌다. 물론 법을 따지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명색이 4대 절이고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인데 체통이 서지 않아 우습게 됐다. 하지만 여름휴가와 맞물리고 주 5일제가 법적으로 실시되어 1년 중 너무 휴일이 많다고 2008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휴일에서 빼는 바람에 달력에는 국경일 표시는 되어있지만 빨간 글씨가 아닌 흑색 글씨로 인쇄돼 있다. 아침에 태극기(?)를 걸어야 하나 마느냐 망설이다 그냥 나왔다. 요즘 태극기는 옛날 태극기가 아닌 게 분명하다.

온종일 달구어진 거리는 밤이 되어도 식질 않는다. 한낮도 그러하지만, 정말 무지하게 더운 열대야다. 요즘은 동네 구멍가게에 다녀오는 게 무척 부담스럽다. 웬만한 생필품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집까지 배달해주는 편리한 세상이다. 이따금 빼먹은 생필품만 집 앞 가게에서 살 뿐이다. 요즘 최저임금 인상 건으로 떠들썩하다. 소상공인협회 간부인 이곳 슈퍼 사장님은 ‘불복종 선언’에 참여하느라 가게는 아예 식구들에게 맡겨놓고 싸돌고 있다고 징글징글하다며 볼멘소리다. 티브이에는 어여쁜 기상케스타가 옆모습으로 비켜서서 “내일도 오늘만큼 덥다”고 또박또박 말한다.

예전에는 이맘때쯤이면 ”복달임하셨습니까?”라며 서로 인사했다. 더위를 피해 물가나 숲으로 나가고 몸에 좋은 음식도 함께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것을 ‘복달임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삼복더위다. 삼복은 초복, 중복, 말복이 있다. 하지 후 첫째 경(庚) 일이 초복(初伏)이고 열흘 후 경일인 다음 주 금요일이 중복(中伏)이다. 중복 이후 절기인 입추(立秋) 후 첫째 경일, 즉 스무날이 지나면 말복(末伏)이다. 어깨에 너무 힘주지 마라. 까짓것, 더워 봤댔자 금방 물러갈 더위 아니더냐.

복날에서 복(伏)은 人(사람인)과 犬(개견)의 조합이다. 개들이 사람에게 잡아먹힐까 두려워하여 바짝 엎드려[伏] 몸조심하는 날[日] 이다. 삼복더위를 이기려고 예전에는 개들을 이용했는데 요즘에는 반려동물도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복달임으로 ‘보신탕’, ‘사철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던 개장국 외에도 이미 삼계탕과 추어탕은 복날 음식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다. 옛날부터 개장국은 돈이 없는 서민들의 복달임이고 있는 사람들은 개고기 대신 쇠고기 양지머리를 푹 고아서 만든 육개장을 즐겨 먹었다.

복달임 음식은 전복, 해삼, 장어처럼 말 그대로 양기를 보충해주는 특급 보양식이다. 뜨거운 음식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것으로만 이해하기 쉬운데, 반대로 차갑게 먹어도 된다. 삼계탕과 다르게 차갑게 조리해 먹는 초계탕이 있다.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홍씨가 즐겨 먹었다는 초계탕은 식초를 가미한 새콤한 닭 육수에 가늘게 찢은 닭고기를 넣어 차갑게 먹는다. 물론 가장 무더운 삼복에는 냉면이나 메밀국수 같은 시원한 음식도 괜찮다.

그뿐이 아니다. 팥죽은 악귀를 쫓고 병치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해서 겨울철인 동지에는 필수로 먹던 음식이다. ‘적소두죽(赤小豆粥)’이라는 팥죽에는 질 좋은 단백질이 포함돼 있어 삼복더위로 허해진 몸을 보하고 피로를 없앤다고 한다. 그 외에도 복달임 음식은 많지만, 이만 줄인다. 몸을 보신하는 음식이란 특별한 것보다는 꽁보리밥일지라도 마음 편하게 먹고 소화만 잘 시키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해괴하고 특별한 것보다는 평소 즐겨 먹던 음식일지라도 가족과 함께 정담을 나누면서 먹으면 그게 바로 보약이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것을 잘 아는 아내는 소고기 조금 넣은 궁중떡볶이와 물김치를 식탁에 내놓았다. 경제 사정이 올해부터는 별로라서 복달임을 이것으로 대신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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