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출신, 한국 시서화 삼절… 서울대 홍대 미대 교수 지내

월전의 작품 ‘3.8선의 봄’.

얼마 전 경기도 이천에 있는 월전미술관에서 북한작가 미술전시회가 열렸다.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만나기 어려웠던 북한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국 미술계의 거장이었던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1912~2005) 화백의 작품도 전시됐다. 월전은 여주 출신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의 하나였다. 전시회에서는 월전 장우성의 ‘3.8 선의 봄’이 최초 공개됐다.

◆여주에서 출생

월전 장우성은 한국화의 대가이다. 그는 한국화의 새로운 형식과 방향을 찾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이당 김은호를 잇는 불세출의 작가로 젊은 시절의 유관순 초상화, 삼팔선의 봄, 매화병풍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 강감찬 장군 등을 그린 정통 초상화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1912년 경기도 여주 흥천면 외사리에서 출생했다. 1930년 이당 김은호(金殷鎬)의 화숙(畵塾)인 낙청헌에서 동양화 실기를 습득하는 한편, 육교 한어학원에서 한자를, 김돈희(金敦熙) 서숙인 상서회에서 서예를 익혔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로부터 1944년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수상하였다. 1936년에는 백윤문, 김기창, 한유동, 조중현, 이석호, 이유태 등과 함께 이당 화숙인 후소회 창립회원이 되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 배렴, 이응노, 김영기, 이유태, 김중현 등과 더불어 동양화의 쇄신을 목적으로 단구 미술원을 조직했다. 1946년부터 1961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49년 국전이 창설되자 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되었으며 1981년까지 국전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1951년 종군화가로 중부전선에 종군했다. 1953년에는 이충무공 기념사업 회의 위촉으로 제작한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81년까지 김유신, 권율, 정약용, 강감찬, 윤봉길, 정몽주 등의 영정을 제작하였다.

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를 사직하고 1963년 미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서 개인전을 가지고 동양예술학원을 개설, 실기와 동양미술을 지도, 강의하였다. 그리고 1966년 3년여의 미국 체류를 끝내고 귀국하였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3년에는 일본 동경 송옥(松屋)백화점 화랑에서, 1980년에는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파리의 세르뉘쉬 미술관에서, 1982년에는 독일 쾰른시립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가졌다. 1974년에는 세종대왕 기념관에 「집현전학사도」를, 1975년에는 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를 제작하였다. 1989년에는 월전미술문화재단 설립하고, 1991년 4월에는 월전미술관을 개관하고 동방예술연구회를 조직하였다. 2005년 2월 28일 사망했다.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 모색

그는 평생 한국화의 새로운 형식과 방향을 모색하여 우리 화단을 이끈 한국 미술계의 거장이었다. 김은호의 제자로 채색 공필 화법을 배우고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 전통 수묵화의 발전을 도모하며 수묵의 사의성이 강조된 신문인화 운동을 이끌어 현대적이며 한국적인 수묵화를 창조하였다. 동양 고유의 정신과 격조를 계승하며 현대적 조형기법을 조화시킨 ‘신문인화’의 회화 세계를 구축, 근대적 화풍을 이룩하여 해방 이후 새로운 미술의 형성과 발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시서화(詩書畵)를 온건히 갖추어 전통 문인화의 높고 깊은 세계를 내적·외적으로 일치시킨 경지에 이른 현대 화단의 마지막 문인화가로 평가 받는다.

생전의 문화예술계에 끼친 공로로 서울시문화상(1959), 예술원상(1971), 5·16민족상(1972), 금관문화훈장(2001) 등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수상록 ‘화실수상’(1999), ‘화단풍상70년(畵壇風霜七十年)’(2003) 등이 있다. 1995년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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