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주 52시간 근무 시대인 7월이 시작됐다. 장맛비가 심하게 내린다. 앞뜰 배롱나무는 붉은 꽃잎을 가지마다 피웠다. 백일동안 피었다가 졌다가를 반복한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부르고 간지럼을 탄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 부르지만, 우리 마을에서 옛 어르신들은 ‘쌀밥나무’라고 불렀다. 한여름부터 100일 동안 빨간 꽃을 피우느라 그 얼마나 힘겨웠던지 껍질마저 벗겨진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벗겨져야 쌀밥을 먹게 된다는 배롱나무에 전설은 너무나 애달프다.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목이 세 개 달린 이무기가 해마다 처녀 한 명씩을 제물로 받아 갔다. 그러던 어느 해에 제물로 선정된 처녀 대신 한 청년이 그녀의 옷을 갈아입고 제단에 앉았다. 이무기가 나타나자 칼로 이무기의 목 두 개를 베었으나, 남은 하나를 베기 위해 이무기가 도망간 섬으로 떠났다. 싸움에 나서면서 처녀에게 청년은 “이기면 흰 깃발을 뱃전에 달고, 지면 붉은 깃발을 달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백일 후 멀리 배가 오는데 붉은 깃발이었다. 청년이 죽은 거로 생각한 처녀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이무기가 죽을 때 뿜은 붉은 피가 깃발에 묻었던 것인데….

세상에 모든 꽃은 열흘 붉은 게 없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만, 한여름부터 석 달 열흘간이나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껍질까지 벗겨지는 아픔을 견뎌내고 있다. 음력으로 5·18이었던 지난 일요일은 아버지 제삿날이었다. 모처럼 형제들과 식솔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상 그득 차린 제사상 앞에 선다. 막내동생네는 기독교 집안이지만 아버지 기일만큼은 빠짐없이 참석한다. 온 가족들이 함께 제사상에 올릴 음식들을 차리면서 덕담을 나누는 제삿날은 아버지가 와계신 듯해서 좋다.

제사를 지낼 때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의 지방은 늘 필자의 필체로 썼다. 아버지는 내게 장남이니 그래야 한다고 해서 어언 40여 년이 넘었다. 가끔 쓰는 글씨지만, 자주 쓰다 보니 요즘에는 진짜로 술술 거침없이 써진다. 현(顯)은 존경의 의미로 나타나 주십사 하는 말이다. 고(考)는 제주의 아버지로 큰 벼슬 없이 평범한 인생을 사셨으므로 학생(學生)이며, 부군(府君)은 고인의 이름을 대신 적는 것이며, 마지막에 쓰인 신위(神位)는 고인의 자리가 이 제사상임을 뜻한다. 취업 준비 중인 장조카는 지방에 쓰인 한자의 뜻을 묻는다. 슬슬 내 자리를 탐내는가 싶다가도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아 대견스럽다. 제발 나중에라도 학생(學生)은 면할 직장을 구했으면 좋겠다.

인간의 욕심이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라고 했다. 성공은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지만 그 기회라는 게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행운의 여신은 앞머리가 길고 뒷머리는 없다는 말도 맞았다. 앞머리를 휘날리며 다가올 때 잡았어야 했는데, 아차 싶어 잡으려 했을 때는 민둥산처럼 아무것도 없는 뒷머리였으니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이처럼 실패를 경험해 봐야 성공의 소중함을 안다. 실패란 성공의 반대말이 아니라 실을 묶어두는 도구일 뿐이니 말이다.

우리 형제들도 이제는 자신들의 인생의 끄트머리쯤에 와있는 게 확실하다. 제삿날만큼은 아파트 얘기, 돈 자랑만 하지 않으면 먼저 가신 아버님을 모시고 화기애애하게 식사하는 시간이다. 달라이 라마에게 인간의 가장 놀라운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이러했단다.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희생한다. 이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돈을 쓴다. 그런 다음에는 미래가 너무 걱정되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 그 결과 현재의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나아가 미래의 삶도 살지 못한다.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실제로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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