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완 편집위원

평택 북부지역에 있는 송탄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 미군부대, 미군클럽, 양색시, 부대찌개, 햄버거, 불악산, 신장쇼핑몰,오산비행장 등이 있다, 한국전쟁이후 가슴 저린 추억과 함께 생겨난 전형적인 주한미군 군사도시이다.

송탄은 1950년대의 한국전쟁을 뒤로하여 주한미군 공군기지가 형성되어서 송탄이라는 지명보다 오산기지로 통하였다, 무분별한 외래문화로 인하여 한때 저속한 문화의 범람에 따른 지독한 오명을 지니기도 하였던 송탄이다.

1981년 송탄시 승격되기 이전에 숯고개가 경음화되어 쑥고개라 불리며 널리 사용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지역의 문인 박석수의 대표 시집 “쑥고개”를 보면 1970년대 확고하게 사용되었던 지명 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의 고향을 오고가는 완행버스 앞에 쑥고개 라는 행선지 표찰이 눈에 보인다. 어린 학창시절에 지방이나 서울갔다 내려올 때 버스 안내양이 “어디가요” 하면 서슴치 않고 “숯고개 가요”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찌보면 옛날 같은데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다, 송탄은 쑥고개가 아니고 숯고개 이라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사실을 늦게 알았기 때문에 항변도 못했다.

탄현(炭峴)은 불악산 아래 송탄지역의 옛 지명이다. 여기서 탄현의 지명을 순 우리말로 풀어보면 “숯고개”이다. 탄현에 참나무가 많아 생활하기 위하여 근근히 숯으로 만들어 장에 팔았다고 한다.

송탄 지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백제(또는 고구려)의 연달부곡, 송촌활달, 금산(金山)이라고 불리웠으며 고구려 남진으로 부산현의 일부에 속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경덕왕 16)에 진위현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건국 후 수도를 한양으로 옮김에 따라 진위현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고,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6년에 경기도 진위군이 되었다.

1914년 일제시대에 군면 폐합으로 수원군의 15개면과 충청남도 평택군 전역을 병합하게 되어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이때 진위군의 일탄면·송장면·여방면·탄현면이 송탄면으로 통합됨으로써 송탄이라는 이름이 처음 생겼다. 이후 1938년에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개칭하면서 평택군 송탄면이 되었다. 6·25전쟁 후 미군 비행장이 송탄면에 들어서자 이 일대가 상업·위락 도시로 변모해갔다. 1963년에 송탄면이 읍으로, 1981년에 시로 승격되어 평택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5월 10일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왔다고 하면서 평택시·평택군·송탄시가 도농복합도시 평택시로 통합되면서 1981년부터 1995년까지 존재했던 행정구역이면서 송탄시가 사라졌다. 이때 송탄이라는 지명을 남기기 위해 1996년 4월 동부동의 지명을 송탄동으로 변경되어 행정동이 생겨났으며 지금은 송탄출장소가 있다. 지산동과 신장동에 탄현로와 송탄로 도로명 있는데 위치적, 지리적으로 재검토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한마디로 시민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지명을 마음대로 다수결에 의해서 정했다는 행정적 착오는 일어나서 안되는 사실이다 지명은 마을이나 지방, 지역, 산천 등의 이름이다. 즉, 땅의 위치를 다른 곳과 구별할 수 있게 부르는 것 명칭이다. 그러나 행정 지명의 경우 삼국시대 지명과 일본식 지명, 그리고 현재의 지명이 있으며, 때로는 외래 지명까지 병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관찬 군현지도집이다. 군현지도집 중 대표적이고, 지도에 지리지를 결합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군현지도인 해동지도(海東地圖),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에서 자연 지명 중 한자와 한글이 동시에 사용된 의미를 가진 산지 지명(山, 岳, 岩, 德, 嶝)과 고개 지명(항, 현, 고개, 재)가 있다. 조선시대 행정 지명은 1894년 갑오경장을 계기로 크게 변화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은 지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당시 식민지 지배를 위해 바뀐 지명을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일본은 1869년(명치2년) 4월에 정부 조직 내에 민부성을 신설하였다. 청일, 러일전쟁에 이용할 목적으로 이미 1840년대부터 자국이 섬 나라라는 지리적 조건을 감추고, 대륙침략을 목표로 조선 팔도의 지리 파악부터 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주소는 읍·면·동명과 토지번호인 지번을 결합한 것이다. 지번은 일제 강점기 1910년에 식민 통치와 조세 징수 등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작성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은 우리와 상관없이 임의적으로 동네이름과 지명이 사라지거나 통폐합 되는 등 행정구역 개편안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

이는 전국방방곡곡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한글 지명을 일본식 한자로 변경했던 것이다. 더구나, 해방이 되었는데도 관계기관에서는 그 지명을 그대로 썼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부터라도 지명과 문화속에 파고든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바로 잡았아야 하겠다.

평택의 북부지역 송탄의 문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문화원이 송탄으로 옮겨와서 그동안 잊고 잃어버린 문화를 재정립해야 한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