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위원

우리 동네에는 전쟁 중에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의족으로 채운 분이 계시다. 옛집이라서 아직도 낡은 대문 기둥에는 ‘상이용사의 집’이라는 팻말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그분은 외출할 때면 왼쪽 가슴에 훈장을 차고 나오신다. 화랑무공훈장이라고 했다. 슈퍼 평상에 앉으면 무용담도 대단했었다. 비록 등급은 낮아도 한쪽 다리를 잃고 난 뒤 뒤늦게나마 받은 자랑스럽고 귀한 가보로 치는 훈장이다. 그런데 그 가문의 영광으로 알았던 훈장이 요즘에는 깡통과 헝겊 조각 취급이라면서 울먹거리며 2절인지 3절인지 모를 노래를 부르셨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원래 이 노래는 이처럼 3절까지 있다.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운동회 때 응원가로,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할 때 불렀다. 그때는 이 노래가 그야말로 청소년들의 애창곡쯤 되었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슬그머니 교과서에서 사라지면서 금지곡이 됐다. 따라서 요즘 청소년들은 이런 노래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게 당연하다. 물론 가사를 개사한 노래가 나오긴 했었으나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금부터라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6·25전쟁의 진실을 사실대로 알리고 다시는 이 땅에 동족끼리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마땅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되었다. 남과 북으로 나눠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할통치였던 그때.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은 분단이 아닌 통일의 신념을 가졌다. 백범 김구 선생도 통일을 위해 북으로 떠나기 전에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무슨 당, 무슨 주의, 무슨 단체는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 영원히 38선이 굳어져서는 안 됩니다. 뜻을 못 이루면 38선을 베개 삼아 죽어 오겠습니다.”라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에서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더라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역사는 감추거나 지워서는 안 된다.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6·25를 통해서 전쟁은 큰 죄악이며, 오래도록 깊은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다. 어제는 ‘6·25 한국전쟁일’이었다. 그때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됐고, 한 달 만에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다. 전쟁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반드시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 3년 1개월 이틀 동안 어마어마한 목숨이 이 전쟁에서 사라졌다. 아직도 한반도 허리를 동서로 가로질러 남북으로 갈라놓은 DMZ, 동족상잔의 피비린내는 아직도 그곳에서 65년이나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때는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처럼 난리 치더니 요즘에는 모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을 꽉 다물었다. 물론 월드컵 등 시선을 빼앗아 갈 명분이 생겼지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그러니 이번 정권도 저번 정권과 무늬만 바뀌었을 뿐 별반 다를 게 없을 성싶다. 다른 곳도 그렇지만 경기도는 집권당이 기초단체장 31곳 중 29곳, 지역구 도의원 129명 중 128명을 챙겼다. 야당은 단 1명뿐이다. 야당은 모두 전멸이다. 이제부터는 지방까지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그야말로 문재인 시대이다. 아무리 봐도 참으로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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