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전력 파악못해 참패… 유엔군 참전 알려

오산의 유엔군초전기념관. 6.25당시 유엔군과 북한군의 전투가 벌어졌던 죽미령에 있다.

오산에 있는 유엔군초전기념관 일대에서 지난 16일 3000여 명의 어린이와 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제2회 한국전쟁 체험박람회’가 열렸다. 유엔군초전기념관이 있는 오산 죽미령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처음으로 유엔군과 북한군이 만나 격전을 벌인 곳이다. 오산전투라고도 불리며 유엔군의 한국전 참전을 공식적으로 알린 전투였다.

◆일본 주둔중인 미군 특수부대 편성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가 일어났다.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으로 내려왔다. 한국은 급하게 미국에 지원 요청을 했다. 미국은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에게 선발대를 파견하여 사태를 판단하도록 했다. 맥아더는 일본에 주둔 중인 미 제24사단의 각 부대에서 병력을 선발하여 스미스(Smith)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했다.

스미스 중령의 지휘 아래 편성된 스미스부대는 1950년 7월 1일 부산에 도착하여 북한군이 남진하는 경부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7월 4일 오산 북방 죽미령 일대 양쪽고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2개 소총중대와 75미리 무반동총 4정 및 4.2인치 박격포 4문을 포함하여 모두 406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수원을 점령한 북한군 제4사단은 7월 5일 아침 107전차연대를 앞세워 스미스특공대를 공격해 왔다. 오전 8시 조금 넘어 미군은 포탄을 발사했다. 그러나 무반동총과 로켓포는 적 전차를 멈춰 세우지 못하였다. 11시쯤 북한군 제4사단의 공격이 개시되었다. 미군은 적 전차에 박격포 사격을 퍼부었으나 적 전차는 이를 무시하고 미군 보병들을 직접 조준하여 사격하는 동시에, 적 보병들은 미군 방어선의 양 옆을 돌아 내려오면서 포위망을 좁혀 왔다.

미군은 적의 포위망이 시시각각 좁혀져 들어오는데다, 무전기마저 고장나 포병의 지원사격을 받지 못하자 오산 쪽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산마저도 북한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간 상태라서 모든 장비와 화포를 버리고 안성으로 철수했다.

스미스부대는 첫 전투에서 150여 명이 죽고 26명이 실종되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맥아더 장군은 죽미령 전투 결과를 보고 받고 비로소 북한군의 전력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유엔군과 북한군의 첫 전투는 유엔군의 참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북한군은 미군이 참전하지 않거나 적어도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으로 남침을 감행하였는데, 남침 개시 10여 일만에 미 지상군의 참전을 확인하게 됐다. 유엔은 유엔 창설이후 처음으로 유엔의 기본 정신에 입각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집단적 군사적 행동을 펼쳤다.

◆미국의 신속한 결정

북한의 남침으로 6.25가 일어나자 다음날인 26일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1차 결의안을 가결한다. 27일 미국 해군과 공군이 참전한다. 2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려 2차 결의안을 가결한다. 미군 지상군은 7월 1일 참전한다.

6월 30일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미 극동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지상군 투입과 38선 이북의 군사 목표를 폭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맥아더는 주일 미 제8군 사령관 월턴 워커 중장에게 “제24사단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라”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7월 1일 미국 육군 주일 미 제8군 제24사단 21연대 제1대대가 부산에 상륙한다. 이 부대는 대대장인 찰스 스미스(Charles B. Smith)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부대(Task Force Smith)로 알려졌다. 그는 과달카날 전투에서도 대대를 지휘하던 경험이 많은 장교였고 제21연대는 일본 규슈 구마모토 우드 기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스미스 중령은 딘 소장으로부터 작전 명령을 하달받았다. 부산에 도착하면 대전으로 향하고 가능한 부산에서 먼 북쪽에서 적을 지연하고, 북쪽에서 주 도로를 차단하라는 것이었다. 대대장의 이름을 딴 스미스 부대는 6월 30일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공수되었다. 2개 중대 406명이었다. 장병 1명이 M1 카빈 실탄 120발과 C-레이션 이틀분을 갖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8시 대전에 도착했다. 그날 밤 기차로 부대는 이동하여 평택과 안성에 1개 중대씩 배치하고 대대 지휘소는 평택에 설치하였다.

두 번째로 한국으로 이동한 제34연대는 7월 2일 부산에 도착하고, 7월 5일 평택 및 안성에 각각 1개 대대씩 배치했다. 7월 3일 북한군은 한강을 넘어 남하하기 시작했고 스미스 부대는 7월 5일 오산 북쪽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첫 교전을 하였으나 큰 피해를 입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7월 7일 유엔군 사령부 창설을 결의했다. 미군 제8군사령부는 14일 대구에서 지휘소를 마련하고 14일 한국 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위임한다. 마침내 일본 동경에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고 네덜란드와 캐나다 프랑스 뉴질랜드 등 각군이 참전해 국제전의 성격을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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