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환득환실(患得患失)” 얻기 전에는 얻으려고 근심하고 얻은 후에는 잃을까 근심한다는 뜻으로, 좋은 뜻을 품지 아니하고 사욕(私慾)을 위하여 무슨 짓이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있어도 걱정이요, 없어도 걱정이란 말이 있듯이 누구나 마음속에 잠재된 사욕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는가 보다. 그러기에 마음을 비우려고 배우고 수양(修養)하며 신앙(信仰)으로 늘 바로 세워가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람으로서의 ‘참된 삶‘이 아니겠는가!

어느 날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君子)도 근심이 있습니까?”

공자는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군자는 닦고 행하며,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그 뜻을 즐기느니라. 이미 얻었으면 그 다스림을 즐길 줄 아나니 이로서 평생 즐거움을 삼고 근심하는 날이 하루도 없도다. 하였다.

덧붙여, 소인(小人)은 그러지 못하나니 없으면 얻지 못할까 근심하고, 얻으면 또 그것을 잃을까 걱정하나니 이것으로 평생 근심하며 하루도 즐거운 날이 없도다. 라고 가르친다.(小人則不然. 其未得也. 患弗得之. 旣得之. 又恐失之. 是以有終身之憂. 無一日之樂也)

환득환실(患得患失)이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는 바로 이러한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비루(鄙陋)한 소인들은 사욕을 위하여 자리를 탐하고, 이익을 추구하며, 권세를 얻고자 이리 붙고 저리 붙어 아등바등 하는데, 얻은 후에는 또한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못하는 짓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자유한국당(自韓黨)이나, 바른정당, 국민의당의 분당(分黨)과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꼴이 너무도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이 정당들이 과연 미래가 있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는 있을까? 아니 이들이 국민을 눈꼽만큼이라도 안중에나 두고는 있는 것일까?

춘추시대의 첫 패자(覇者)인 제환공(齊桓公)에게는 세 명의 간신(奸臣)이 측근으로 있었다. 사람의 고기를 먹고 싶다는 제환공에게 요리사인 역아(易牙)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그 고기를 요리하여 제환공에게 바쳤고, 환관 수조(竪刁)는 제환공의 신임을 얻고자 후궁이나 궁녀들의 순결을 보장한다며, 스스로 거세(去勢)하여 고자(鼓子)가 되었다. 개방(開方)은 부모를 저버린 채 제환공의 환심을 사는 일에만 매달렸다.

이에 충직한 관중(管仲)은 세 놈들을 멀리해야 한다고 제환공에게 간언(諫言)하였다. 제환공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역아는 아들을 죽여서까지 왕의 총애를 구한 자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는 법인데, 자식까지 죽일 정도라면 장차 임금께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수조는 성기(性器)를 거세하면서까지 왕의 사랑을 얻으려 한 자입니다. 누구나 소중하게 여기는 부분인데, 자기 몸을 고자로까지 만들 정도라면 장차 임금께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개방은 부친이 돌아가셨는데도 상(喪)을 치르러 가지 않았으니, 장차 임금께는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이 세 사람은 권세를 차지하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자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만행을 저질렀으니, 앞으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임금에게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으니 진정 충신다운 충신의 경고인 것이다.

하지만 제환공은 관중의 충고를 무시했고, 결국 이 세 사람에 의해 유폐되어 비극적인 생의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자리를 탐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여 그것을 위해서는 권력자의 종기(腫氣)나 치질(痔疾)까지 빠는 자를 우리는 간신이라 부른다. 그들에게는 백성이나 국가의 안위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 없는 것이다. 오직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부(富)와 권력(權力) 이익(利益)만이 존재할 뿐이다. 간신에게 죽임을 당한 제환공의 사례에서 환득환실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환득환실에 혈안이 된 철새 정치꾼과 짝짓기에 정신 나간 무신념, 무정견의 정당을 경계하자! 이들이 곧 현대판 역아, 수조, 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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