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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완 칼럼] 당신이 보는 족보는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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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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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완 시인

지금 살고 있는 세대는 손바닥만한 휴대폰없이 생활할 수 없고 살 수 없도록 중독되어가는 세상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속에서 한 생명체처럼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SNS는 또 하나의 세상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할 수있다. 얼마전에 SNS를 통해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고 모방송국 앵커 같은 성씨(姓氏)인 사람에게 “손ㅅㄲ ~” 공유한 사람은 “손ㅆㄲ ~” 라고 댓글을 남기는 것 보고서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같은 성씨한테 막말하는 걸 보니 참을 수 없어 “같은 성씨인데 막말이라” 했더니 그 이후로 댓글을 남기는 네티즌이 없었다, SNS는 개인의 사생활을 공개하면서 언어의 표현 자유를 만끽한다고 하지만 악의적인 펌하와 책임성 없는 발언는 자제 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 해본다.

사람이면 누구나 성(姓)이 있다, 이름 앞에 붙은 명칭이 성씨(姓氏)이다. 성은 왜 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볼 법하다? 어느 나라의 성은 어머니 성을 따르고, 어느 나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합해서 생성되는 경우도 있고 결혼하면 남편의 성(姓)을 따르기도 하고, 부부(夫婦)가 서로 의논해서 결정하여 각자 성을 그대로 가질수 있고 아내의 성 위에 남편을 덧붙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성이 없는 사람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어떻게하는가 각자 성을 가지고 자식에게는 부계사회이다 보니 아버지 성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족보(族譜)의 기원은 중국의 성씨제도라 할 수 있는 한식씨족제도(漢式氏族制度)를 토대로 정착되었다. 그 시기에는 1000여 년 전 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인 것으로 추정하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는 안동 권씨의 성화병신보(成化丙申譜)로 조선 성종 7년(1476년)에 간행된 족보인데 명나라 헌종(憲宗)의 연호인 성화(成化)12년에 간행되었다 하여 ‘성화보(成化譜)’라 부른다.

‘고려사’를 살펴보면 양반 귀족은 씨족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제도적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계보인 선원보첩(璿源譜牒)의 편찬과 종실의 잘못을 규탄하는 임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관서 종부시(宗簿寺)에서 족속의 보첩을 관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귀족 사이에는 계보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대부 집안에서 사적으로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했다.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대부분 족보가 이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족보 대부분은 족보간행을 위해 초안을 하고, 관계 자료를 충실히 보완한 뒤 간행에 착수하여 내용에는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의 족보들은 초안이나 관계 자료의 검토, 고증도 없이 자의적으로 기록하여 간행되었다. 그리하여 멋대로 수식이 가하여졌음은 물론,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선대의 벼슬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작하는 등 편법이 난무했으며, 심지어는 명문가의 족보를 사고팔거나 훔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가문의 격을 높이려는 욕심에서 야기된 것이다.

이 외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두 차례의 격심한 전란을 겪는 과정에서 종래의 엄격했던 신분제도가 붕괴한 것이 족보의 발달을 촉진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동족의 명부인 족보를 만든 것은 다른 혈족이 혈통으로 속여 말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는 과정에서 족보를 둘러싸고 갖가지 폐단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21세기 4차산업혁명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따분하게 족보가 무엇이 중요하겠나고 하겠지만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문화유산이다, 대중이 함께하는 사이버 공간이라도 자기 성씨가 귀하고 소중하면 남의 성씨도 귀한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야겠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집안에 있는 족보를 한번 보면서 가족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마음에 족보을 담아 보자, 족보 본래의 뜻은 어디까지나 자기네의 혈통을 존중하고 동족끼리의 유대를 돈독히 하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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