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이원규 시인 vs 지리산 이원규 시인

구례 산동에는 산수유 축제가 한창이다. 필자의 고향 오산에서 피자가게를 하다가 그곳으로 내려가 정착한 지리산 나들이장터 ‘봉성피자’ 최봉성 후배도 만날 겸 밤 기차표는 구례구까지 끊었다. 이미 후배는 노고단게스트하우스에 숙소까지 예약한 상태였다. 새벽에 일어나 백조와 함께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 산수유사랑공원을 한 바퀴 돌고 왔다. 후배는 ‘더 좋은 곳 못 보셨네요’라면서 트럭의 시동을 걸더니 둘이 타라더니 반곡마을에서부터 상위마을 산유정까지 직접 차를 몰아 안내해줬다. 정자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온통 노랗게 물든 산수유 범벅이다. 이제 또 한 사람을 더 찾아가야 한다. 도로명 주소로는 전남 광양시 다합면 토끼길 326(신원리 1173-3)번지, 하동의 섬진강 건너 매화마을 근처라는 정보밖에는 아는 정보가 없다.

지리산은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군·하동군·함양군 등 3개 도 5개 시·군을 품고 있고 크고 작은 골도 아흔아홉 개란다.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필자와 같은 이름의 이원규 시인을 만나야 한다. 구례터미널에서 출발해서 하동에 막 도착했는데, 둘째 아들 상윤(테리)이가 월요일에 카투사에 입대해서 함께 외출 중이라는 신희지 여사의 톡이 떴다. 원래 계획은 신 여사(고 아르피엠)와 황 여사(백조) 그리고 나 이원규(이산저산)와 지리산 이원규(낙장불입) 4인의 만남이었는데 아쉽게도 불발이다. 어찌 됐든 지리산 이원규 시인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야 할 상황이다. 이원규 시인마저 오토바이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면 그야말로 큰 낭패다.

택시기사에게 “지리산행복학교로 가자” 했더니, 옛날에 학교가 있었던 곳이라면서 ‘매실가공유통센터’에 내려준다. 아니다. 다시 택시를 되돌려 토끼재길 입구에서 내렸다. 마침 외압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께 ‘이원규 시인 집’을 물었더니 바로 앞집이다. 벽면에 매화와 호랑이 벽화가 그려져 있고 앞마당에 솟대도 서 있다. 마침 강아지를 분양받으러 왔다는 손님도 와 있다. 고맙게도 그분이 우리 둘의 멋진 사진도 찍어줬다. 이원규 시인이 건네는 시집을 받았다. 저자 사인이 ‘이원규 시인께 2018. 3. 23 이원규 드립니다’이다. 가야겠다고 일어섰더니 벽화 앞에 백조와 나를 세우더니 커플 사진도 찍어줬다. 안양의 김대규 선생님께서 하늘의 부름에 따랐다는 소식이 왔다. 섬진강까지 천천히 걸었다, 아주 느리게. 천지사방에 깔린 게 하얗고 붉은 매화뿐이다. 백조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꽃 예쁘지’라면서 꽃만 바라보게 했다.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 삼대째 내리 /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 아무나 오지 마시고 (중략)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 오시라 /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부분

이원규 시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오토바이와 걷기이다. 도법, 수경 스님과 함께 제주도를 포함해 대한민국 땅 소읍 여기저기를 두루 밟았고, 문규현 신부 등과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와 종교인·일반 시민들과 함께 ‘한반도 대운하 건설 반대’를 위해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일대도 걸었다. 이 시인은 지리산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살지 않았다. 전남 구례 피아골과 문수골과 섬진강변, 전북 남원의 실상사, 경남 함양의 칠선계곡 입구,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 근처 마을 등등 이곳저곳 빈집으로 옮겨 다닌 게 벌써 아홉 번째란다.

행복을 위해서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던 그는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과 더불어 ‘지리산행복학교’도 열었다. 아내 신희지 여사는 교무처장이다. 뮤지컬 연출가 계일의 시극반, 도편수 김민성의 한옥짓기반 등 여러 강좌를 개설했다.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길걷기 선생님이다. ‘돌아보면 그가 있다’의 후기에서 “불러도 오지 않으니, 이마 따스한 꽃을 찾아 내가 간다. 가서 직접 폭설 속에 산짐승의 얼굴을 내밀겠다.”라고 다부지게 다짐했다. 시인이라고 해서 시만 쓰는 게 아니다. 방 한 칸을 전시장으로 꾸민 ‘예술곳간 몽유’의 벽면에는 그의 빼어난 사진 작품들이 빛을 내뿜고 있다.

이원규 시인은 1984년 월간문학,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빨치산 편지’,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돌아보면 그가 있다’, ‘옛 애인의 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스물일곱 그 칼날에 베이다’, 육필시집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벙어리달빛’,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지리산편지’,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등이 있다. 이 시집으로 제16회 신동엽 창작상, 생명평화탁발순례로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다.

너무 짧은 만남, 그래도 반가웠던 환한 봄! “우리가 오기 전에도 지리산은 있어왔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섬진강은 유장하게 흐를 것이다.” - 지리산 이원규

돌아보면 그가 있다, 창작과비평사, 112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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