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를 이끈 137명을 기억하다

 일제때 비밀결사 순국 4인 등 나라 발전에 큰 역할

“풍부한 정보와 자료로 향후 인천 연구에 도움될 것”

개교 123년의 인천고등학교가 한국 근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동문 137명의 활동상을 알리는 ‘인천고 인물사’를 펴냈다. 전국 고교에서 모교 동문 인물사를 펴내기는 인천고가 처음이다. 인천고는 1895년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인천지교로 인천 신포동에서 개교했다. 관립실업학교와 인천상업학교를 거쳐 1951년 인천고교로 자리잡았다. 졸업생이 3만여 명에 이른다. 인천고총동문회는 26일 동문 200여 명과 책에 실린 동문 가족들을 초대해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인천고 인물사’에는 한국 근현대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고종의 5번째 아들인 의친왕을 중국에 망명시키는 의열단 행동대원으로 활동한 이을규·이정규 형제, 고종 어진을 그리며 한국미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당 김은호, 서울대총장을 지낸 한국 경제학의 큰 별 신태환 박사, 서울대 교수로 한국 미생물학계를 이끈 최성배 박사, 반도체 분야서 세계적 업적을 남긴 유필원 박사, 한국인으로 미국 FDA 승인 신약을 처음 개발해 한국생명과학의 새 장을 연 홍창용 박사, 창경원 동물부장이었던 김정만 동물박사, 리얼리즘 연극의 1인자로 꼽혔던 극작가 함세덕,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사가 한상억, ‘이별의 인천항’을 부른 국민가수 박경원, 7080세대와 함께 했던 ‘조약돌’ ‘친구야 친구’를 부른 박상규, 15년간 고려대 야구감독을 지내며 선동렬과 류중일 등 한국 야구의 기둥을 키워낸 최남수, 1960~1970년대 한국 연식정구를 이끈 함관수, 일제강점기 중국 복싱을 평정했으며 한국 프로복싱의 산파역을 한 박순철 등이다.

강화도 3.1운동을 이끌었으며 최초 미국 유학 성공회 사제가 된 조광원, 한국 무속을 꿰뚫은 민속학자 김태곤, 기독교 감리단 총감독을 지낸 장광영 목사, 인천의 대표적 기업인 영진공사 창업주이며 인천시의회 의장을 지낸 이기상, 일본 고시엔대회에 출전해 맹활약한 인천 야구의 대부 김선웅,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회의원 한영수, 이택돈 등도 포함됐다.

‘인물사’의 하이라이트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초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숨진 39회 졸업생들이다. 20여명이 학병반대와 창씨개명 반대 등을 전국에 확산시키려고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적발당해 모진 고문 끝에 4명이 광복도 못본 채 옥사했다. 광복이 되고 20여명 중 10명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훈장을 받았다. 고교 동기동창 중 10명이 독립유공훈장을 받은 사례는 이들 외에 없다. 인천고 교정에는 이들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추모명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인천고는 유난히 저항 정신이 강해 독립투사와 좌익 공산주의자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인물사 편찬위원장인 소설가 이원규(71)씨는 “친일파와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수록 여부를 두고 동문끼리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눴다”며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 그대로 실었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의 거물로 북한 사법상을 지낸 이승엽, 1946년 조선공산당의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의 중심인물이었던 송언필, 제주 4.3항쟁을 지휘하고 처형된 이두옥, 일제강점기 6.10만세 운동을 주도한 뒤 친일파로 변절한 차재정, 인천에서 큰 정미소를 운영했던 친일파 김태훈 등도 수록됐다. 일제 관헌문서나 신문 잡지에 인천상업학교, 인천고를 나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졸업대장에 없으면 ‘추정’이라는 단서도 달았고 자료 부족으로 수록에서 빠진 유명인들도 있다.

이기문(66·변호사) 총동창회장은 “대한민국을 변화시키려 했던 수많은 동문들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현 동문들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인물사를 준비하게 됐다”며 “생존해 계신 훌륭한 선배들도 많으나 일단은 고인들을 대상으로 책을 발간했다”고 말했다.

소설가와 시인·학자·교수·기자로 구성된 편찬위원 8명은 지난 1년여간 일제강점기 신문기사는 물론 한국인물사DB와 언론사DB를 포함해 국내 인물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가족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으며 국가기록원과 일본의 공문서 자료실까지 접촉했다.

편찬위원인 조우성(71)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일제강점기 각종 판결문과 사진 등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료를 위원들이 확보해 만들었다”며 “지금까지 나온 인천학 관련 어떤 자료집보다 내용과 형식면에서 충실해 앞으로 인천을 연구하는 자료로서 손색이 없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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