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현충원에 있는 홍진의 묘.
▲ 서울현충원에 있는 홍진의 묘.

자유공원은 1888년 조성된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자유공원은 1883년 개항으로 설정된 각국 조계지에 위치했다. 조계지는 지금의 중구 항동, 송학동, 북성동 등지를 포함하는 46만2000㎡에 이르는 면적이었다. 자유공원은 조계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휴식 공간이었던 것이다.

자유공원은 독립운동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3·1운동이 계속되던 1919년 3월9일 오후 기독교 신자와 학생 약 300여 명은 바로 이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강제 해산당했다.

만세운동은 시내 전역으로 번졌다. 당시 인천은 일본 도쿄에서의 '2·8 독립선언' 소식이 국내로 전달된 통로이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도 그만큼 삼엄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성정부 수립을 선포하기 위해 지역·종교 대표자 20여명이 자유공원에 비밀리에 모였다. 엄지손가락에는 흰 종이나 헝겊을 둘러 서로를 알아봤다. 정부를 수립하려고 독립운동가들이 모인 최초의 회합이었다.

역사전문가들은 "정부수립운동에서 13도대표자대회가 중심에 있었다는 점이 바로 인천 만국공원의 역사적 위치"라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