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홍진.
독립운동가 홍진.

1919년 3월 17일, 경성 내자동 한성오의 집에서는 일제의 시선을 피한 은밀한 모임이 열렸다. 모임에 참석한 인물은 홍진, 이규갑, 한남수, 김사국 등이었다. 모임을 소집한 좌장인 홍진은 구한말 검사로 재직하다 한일병탄이 일어나자 곧바로 사표를 제출한 후 감옥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고 있었다.

홍진은 3.1운동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려면 중심이 필요하고 대외적인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회합에선 '한성정부' 조직안이 논의됐다. 이들은 인천 만국공원, 지금의 자유공원에 각 지역 대표들을 소집하기로 했다.

1919년 4월 23일 전국 13도를 대표하는 25명이 서울에 모여 국민대회를 개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3ㆍ1운동의 정통성을 이은 한성임시정부는 이날 국민대회에서 약법 제1조 `국체는 민주제를 채용함`, 제2조 `정체는 대의제를 채용` 등을 명시함으로써 한성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임을 명백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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