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희 시인의 ‘구두를 신고 하늘을 날다’

신준희 시인 대동문고에서

알코올이 이끄는 대로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나는 자주 까먹었다

날마다 다닌 이 길은

처음 보는 사막이었다.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작, ‘이중섭의 팔레트’

비 그친 맑은 하늘에서 햇볕이 따사롭게 내렸다. 안양의 큰 시인 김대규 선생님 댁을 방문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일단은 만남의 장소를 우리들의 단골서점인 대동문고로 정했다. 정확하게 11시에 맞춰 도착했다. 대동문고의 팀장에게 전후 사정 얘기를 한 후 사진 촬영도 허락받았다. 베스트셀러 진열대 앞에서 그럴싸한 장소를 탐색하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원규 선배! 여기!” 박공수 시인이 신준희 시인을 앞세우고 책더미 속에서 나타났다. 몇 컷 촬영 완료, 팀장은 커피까지 직접 타와 참 잘 마셨다.

삼덕공원을 지나 선생님 댁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새해 첫날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기쁜 마음에 선생님 댁 대문 앞까지 갔다가 차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섰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었다. 신준희 시인은 오랜만에 친정에라도 가는 듯 다리를 건너자마자 슈퍼에서 탐스럽게 잘 익은 과일을 챙긴다. 박공수 시인이 앞장서서 골목길로 들어섰다. 길가에 ‘구내이발소’가 보인다. 그렇다. 바로 여기다. 초인종을 눌렀다. 이윽고,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대문을 지나 대청으로 들어섰다. 선생님께서는 서재의 방에서 안락의자에 힘없이 기대고 계시다. 정말로 오랜만에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따스하니 좋다. 우리는 그 선생님의 손길 안에서 30년 혹은 20년, 10년씩 가르침을 받으며 지금까지 글을 써왔다.

이 시집은 신준희 시인이 근 10여 년 이상을 신춘문예에 도전하면서 썼던 시들을 모았던 책이다. 시집의 맨 끄트머리 해설에서 신준희 시인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것을 예감했다.

“사람들 가운데서 외로움의 본질에 가장 먼저 깊숙이 빠져드는 사람을 일러 시인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시인은 그 외로움의 질량만큼 감수성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이 시집의 제호를 다시 풀어쓰자면, 외로움의 구두를 신고 감수성의 하늘을 날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준희 시인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음을 본다.” - 김대규 시인의 해설 ‘자연서정과 감성의 형이상학’ 중에서

“예술은 감동을 줘야 해.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손을 천정으로 향하게 하시며) 올려주는 거야. 무엇보다도 자기세계는 자기가 구축해야지, 열심히!”

선생님은 ‘열심히’라는 단어에 잔뜩 힘을 주셨다. 하기야 ‘아픔까지도 열심히’ 아파야 한다는 분이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3차 항암 투여에 들어가신단다. ‘주사 맞고 나면 많이 아파.’하시는 말씀에 우리는 삐져나오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이젠 겨울도 가고 새봄이 왔으니 선생님도 새봄에는 건강을 되찾으시길 기원하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나오는 우리에게 눈길을 떼지 않으시며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하얀 손이 눈에 밟힌다. 선생님은 그 손으로 만년필을 잡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내셨다. 감히 우리는 다가서지도 못할 찬란한 문장의 텃밭을 애써 일구어 놓으시고 지금은 잠시 쉬고 계실 뿐이다. 잠시만, 정말 잠시다. 새봄에는 선생님 손 꼭 잡고 삼덕공원 한 바퀴 둘러볼 참이다.

신준희 시집 구두를 신고 하늘을 날다 표지

구두를 신고 하늘을 날다, 고요아침, 128쪽, 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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