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편집국 사회2부 부장

필자가 부산에서 살았던 80년대 말 때쯤 얘기다. 한창 연극에 관심이 집중됐던 터라, 휴일마다 G 소극장에 가서 놀았다. 그 당시 극단이라는 게 돈 없는 배우들이 오갈 데 없어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맹연습하던 시절이었다. 봉지라면 한 상자만 들고 가면 극진한 칙사 대접도 받았다. 필자는 그 당시 ‘전국 젊은시’ 부산·경상지역 회장이란 그럴싸한 직함을 받아 자랑으로 여기며 겁도 없이 활동했었다. 그야말로 예술이라는 게 세상을 구원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구제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야말로 정의와 사명감이 불타올랐던 애송이 시절이었다.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직장 때문에 내려갔었다. 살아남으려니 든든한 끈이 필요했었다. 누군가가 조금만 밀고 당겨준다면 금방이라도 무엇이 될 듯했던 꿈 많던 문청시절이었다. 가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 보이게 마련이다. 고수는 절대로 개폼을 잡지 않는 법이지만, 외양을 꾸미며 본색을 감추느라 정신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명함에 극단의 전화번호를 새겼고, 만남의 장소는 당연히 그곳으로 정했다. 제대로 끈을 잡았다. 그 당시 부산에서 잘 나가던 신춘 출신의 K, C 시인은 물론 행사장에서 만난 선배 시인들의 이름까지 팔아가며 L 작가와 상당히 친한 사이인 척했을 뿐이다. 더구나 L 작가의 대학 후배라는 데야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을 살면서 꼭 필요한 다섯 가지 끈이 있단다. 첫째가 ‘매끈’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세련되고, 밝고, 자신감 넘친다면 뭘 해도 된다. 까칠하면 희망도 달라붙지 못한다. 두 번째는 ‘발끈’이다. 성깔이 있어 화를 잘 내는 게 아니다. 실패해도 보란 듯이 일어서는 힘이다. 가슴속에 품은 희망이 동틀 때의 태양처럼 어둠을 밀어내면서 발끈 떠오르듯이. 세 번째가 ‘화끈’이다. 물에 술 탄 듯 술에 술 탄 듯 행동하지 말고 기왕지사 할 일은 화끈하게 해치우란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질끈’과 ‘따끈’이다.

법조계에서 시작해 문단, 연극, 영화계와 정치판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에 그 오랜 명성들이 풍비박산 났다. 내게는 단단한 끈이었던 L 작가도 이젠 회생 불가의 인생이 됐다. 어떤 이는 목숨마저도 끊었다. 어떤 의원은 금배지도 내던졌다. 앞으로도 계속 몇몇은 더 죽게 생겼다. 저녁 뉴스조차 창피해서 젊은 자식들과 함께 보지 못할 지경이 됐다. 나름 잘 생기고 잘 나가고 힘쓰던 사람들의 이름이 가차 없이 지워진다. 물론 몹쓸 짓을 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아무리 용서해주고 싶어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하필 잡은 끈이 썩은 동아줄이었더라도 매끈, 발끈, 화끈, 질끈, 따끈했던 그 옛날 그 시절 추억이 그립다.

이상한 괴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 아니 괴물 같은 세상으로 변했다. 갈수록 놀라운 사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불쑥 올라와 시한폭탄이 돼 터진다. 시간이 갈수록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판이다. 땅에서 기는 짐승들의 희망 사항은 날개를 다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을 시끄럽게 구는 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날개를 달려고 기 쓰던 짐승들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랫도리로 쏠린다. 나름 잘생기고 잘나가는 사람들도 이제는 달리 보인다. 세상이 온통 범죄자소굴처럼 변했다.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오랫동안 날개로 여겼던 권력과 명성도 애석하게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엉뚱한 데에 힘쓸 때가 아니다. 따끈한 세상 만드는데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뛰어야 할 때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우리는 어쩌자고 엉뚱한 미투에 열광하며 정신 빠져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미투 이후로 필자는 전철 안에서 빈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는다. 더구나 젊은 여성이 앉아있다면 차라리 창밖을 보며 서서 간다. 서 있는 게 훨씬 편타.

 

 

오랜 명성 풍비박산

젊은 자식들과 함께

뉴스조차 못 볼지경

 

 

세상이 범죄 소굴처럼...

전철에 자리나도

여성 있으면 안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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