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어장터 만세를 주도한 심혁성의 기록.

심혁성(深爀誠 1888~1958)은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계양면 장기리(場基里) 장터에서 주동이 되어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이곳을 경계하고 있던 일경에 의해 현장에서 주동자로 피체되었다. 그가 체포된 후에도 군중은 그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만세시위를 계속하였고, 이 만세운동은 각 면으로 확산되어갔다. 1년 3개월여의 옥고를 치루고 나와 논과 밭 그리고 집을 팔아 생필품을 장만하여 장터에서 빈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처자를 거느리고 산골로 은신, 전국 심산유곡을 30년 가까이 방랑하며 약초를 캐어 연명하면서 한편으로는 만주 등지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은선, 심혁성 도망치게 하려다 일경 칼에 찔려

이은선(李殷先 1876 ~ 1919)은 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이다. 1919년 3월 24일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장날을 이용하여 심혁성(沈爀誠)·이 담(李담)·최성옥(崔成玉)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장기리 장터에서 3백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부내(富內) 경찰 주재소에서 이궁희삼차(二宮喜三次) 등 4명의 일본인 순사가 주동자 심혁성을 체포하였다. 이에 그는 군중과 함께 순사를 포위하고 심혁성을 풀어 줄 것을 요구하며, 일경을 구타하여 심혁성을 도망치게 하였다. 이 때 일본인 순사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차고 있던 칼로 선두에 있던 그를 찔러 현장에서 죽게하였다. 그의 순국은 장기리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더욱 격렬하게 하였다.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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