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설의 뿌리를 파헤쳤다. 그에 의하면 손돌이라는 사람에게서 손돌목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외려 이 이야기는 지명에서 발전했다고 말한다. 원래 이곳 지명이 손돌이었고, 그에 착안해 사람들이 이런 전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고려사 이승휴(李承休) 열전의 한 대목을 든다. 당시 몽골 침략을 받고 대책에 부심하던 고려 조정에 이승휴는 다음과 같은 방책을 제시한다.

"적이 착량(窄梁)을 통과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반쯤 지나가면 정예병을 보내 적 선단을 가로 끊어버린 후 강도(江都·강화도)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앞서 나간 적은 고립될 것이고, 뒤처진 적은 거점을 상실해 서로 호응하지 못할 터이니 적은 격파될 것입니다."

이 교수는 여기에 나오는 '착량'이 바로 '손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용비어천가에서 왜적이 강화 쪽으로 침입해 강화부(江華府)와 착량의 전함을 불지르며 크게 기세를 올린 일을 거론하면서 이 착량을 손돌이라 읽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용비어천가는 착량이 "지금 강화부에서 남쪽으로 30리가량 되는 곳"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이승휴 시대 고려 중기에 지금의 손돌목은 손돌로 일컬었으며, 바로 이런 지명에서 손돌이라는 가공의 원혼 많은 인물을 백성들이 만들어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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