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사회2부 부장 이원규

글을 쓰는 일이란 보기보다는 중노동이다. 글감이 많을 것 같아도 찾으려면 없고, 막상 찾아서 쓰면 이미 다른 사람이 건드린 소재라서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취미 삼아 쓰는 글이라면 쓰지 않으면 그뿐이겠지만, 밥벌이로 쓸 때는 정말 입맛조차 잃게 마련이다. 이번 칼럼도 연 이틀째 붙들고 붓방아만 찧고 있다가 가까스로 마감 시간이 임박해서 보냈다.

세상에는 글을 짓는 사람과 짖는 사람이 있단다. ‘짓는다’라는 것은 한 문장 한 문장 벽돌을 쌓듯 견고한 문장으로 언어의 집을 완성하는 것이고, ‘짖는다’라는 것은 개가 짖듯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공포감만 준단다. 듣고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간의 경험에 미뤄보건대, 글은 창작보다는 모방에 가깝다. 남의 것이라도 내 것으로 가져와 잘 소화해서 방귀만 잘 참으면 기막힌 문장으로 둔갑하니 말이다.

지금 쓰는 이 글도 100에서 99.999는 국어사전과 영한사전에 있는 단어와 문장이며 이미 성경을 비롯한 여타 종교의 경전 등에서 이미 마르고 닳도록 써먹은 말씀들이다. 그것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해체할 뿐이라서 상큼한 맛이 나질 않는다. 예전처럼 풍부한 상상력도 발동되지 않는다. 정보가 홍수처럼 넘침에도 불구하고 막상 쓰려면 쓸데가 없는 것들뿐이다. 세상이 흙탕물이라서 물속을 깊이 들여다볼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도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가라’는 명령만큼은 신주처럼 받들며 산다.

2월은 열두 달 중 가장 짧다. 엊그제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닷새가 지났다. 그러고 보니 설날도 열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지난달 1월 31일 밤에는 지구 그림자가 달을 먹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려고 목덜미를 뒤로 젖혀 뚫어지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른바 슈퍼 블루 블러드(Super Blue Blood Moon)문이라고 보름달이 가깝고 크게 보이고, 창백한 빛깔로 보이기도 하다가 지구 그림자가 달을 완전히 가렸을 때는 황금빛을 보이며 삼박자로 개기월식 한 날이었다. 이런 현상은 35년 만이었고, 앞으로 19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단다.

지금으로부터 49년 전인 1969년까지는 달은 신비하고 영험한 존재였다. 그해 여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실황이 생중계되었다. 동네의 어른·애들 할 것 없이 모두 이태백이 놀던 달을 보려고 이장집 앞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침을 삼켰다. 흑백 티브이 화면에 잡힌 달 표면에 첫발을 딛는 암스트롱, 그 걸음은 전 세계 수많은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지만, 한편으로는 실망도 컸었다. 계수나무도 떡방아를 찧는 토끼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가 빌고 빌던 장독대 터줏가리도 치워졌다.

지난 일요일은 ‘봄의 시작’이라는 ‘입춘’이었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더니, 절기가 무색할 정도의 한파가 찾아왔다. 에너지 절약하겠다고 내렸던 보일러 스위치를 다시 올리고 서재에 웅크리고 있는데, 점심은 입춘식이라며 꽁보리밥으로 먹잖다. 광교산 보리밥집에서 몇 차례 먹어봤지만, 집에서 먹는 맛도 괜찮았다. 비록 시고 매운 다섯 가지 생채 음식인 오신반은 아닐지라도, 마트에서 구한 참나물, 돌나물, 취나물, 곤드레, 삽주 싹을 넣고 청국장과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 맛은 별미 중 별미였다. 다만 걱정이라면 방귀가 문제였지만….

요즘 모 검사가 용기 있게 폭로한 성추행 건으로 ‘미투(#Me Too)’운동의 불길은 정치권과 공직 사회는 물론 기업과 학계까지 거침없이 번지는 중이다. 보리밥은 안 잡수고 피비린내 나는 세금으로 귀한 쌀밥만 잡수시는 나리들이야 방귀 뀔 걱정 안 해서 참 좋겠다. 새롭게 시작하는 24절기의 첫 번째 날 입춘도 이제는 지났다. ‘한때 방귀 좀 뀐’ 자들은 빼고, 앞으로 크게 좋은 일들만 생기고, 기쁜 일들로 가득 차면 좋겠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다. #Me Too, 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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