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처인구청공원환경과장 강구인

나짱자수 芽莊慈手
치아인자수稚我引慈手 어린 내손을 끄시던 어머님 손이 
세거금산수歲去今傘壽 세월 흘러 이제 80세 되시며 
사여어자구使余御慈軀 제 손으로 하여금 당신을 잡아드리게 하네요.
오호시인생嗚呼是人生 아 ! 이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올 1월 중순에 올해 80세가 되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따뜻한(평균 23℃) 나라 베트남의 나짱(芽莊, Nha Trang)으로 1주일간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거동이 불편하시기 전에 모시고 간다고 간 여행이었는데, 조금 피곤해 하면서도 흡족해 하시며, 다녀오셔서는 가이드 하느라 애썼다며 손녀에게, 당신에겐 큰돈인 액수의, 용돈을 쥐어 주셨다. 

이번 여행에서 당신은 어느 정도 흡족하신지는 알길 없으나, 내 나름대로는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시내도로가 신호등이 거의 없음)를 밀물 같이 몰려오는 오토바이 떼를 가로질러 건너는 것은 돌아오는 날까지도 어머님께서 제일 난감해하시던 부분이었다. TV속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악어가 득실대는 강을 누우떼가 필사적으로 건너는 장면과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악어 대신 교통사고라는 위험이 도사린 연출이었다. 덩달아 나도 안심이 안 되어, 항상 어머님 손을 꼭 잡고 건너야 했다. 몇 번 그러다가 문득, 초등학교 입학식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첫날 등교하던 생각이 나며, 어법도 안 맞는 오언절구五言絶句를 떠올려, 페이스 북에 올리게 되었는데, 난데없는 ‘효자孝子’라는 댓글 난리에, 그간 내가 어머님께 못했던 부분이 파노라마로 더욱 나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올해로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고, 또한 두 자식들을 키워보니, 부모로서의 심정도, 자식으로서의 심정도 알게 되었다. 모처럼만에 어머님을 위한 행사였는데 마음이 개운하지 못함에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온천에, 해수욕에, 사원에, 성당에, 폭포수에, 공연에, 마사지 등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며, 현지 음식 위주로 식사를 모시고, 평생에 다시 방문하실지 모를 곳의 정취를 많이 느끼시도록 했지만, 그 마음 헤아릴 길 없다. 끝없는 벌판의 한편에선 모내기들을 하고, 한편에는 무럭무럭 자라고, 또 한편에는 이삭이 나오는 풍광과, 밋밋한 산지 밭에는 사탕수수(sugar cane)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풍광에 한국에서의 대한大寒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농촌의 콘테이너식 사각모양의 가옥들도 인상 깊었다. 

여행 중에도 괜찮은 반찬이 나올 때면, 매번 耳順의 자식 먹으라며 내 앞으로 옮겨 놓으시는 八旬 어머님 배려에 참으로 민망했다. 그것이 당신에겐 자연스런 모정의 발로이시지만, 잘 모시지도 못한 나에게는 왜 그리 부담으로 느껴지는지? 

이국땅에서 3대가 나란히 누워 마사지 받던 것이 새삼 느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여행계획엔 없던 야간 이벤트가 아주 좋았는데, 그 곳은 이제 신생으로 뜨는 관광도시인지라 맥주시장을 놓고 경쟁이 아주 심한 곳으로 보였다.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맥주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야간 공연을 하는데, 싱가포르가 원산지라는 맥주회사에서 개최하는 야간 공연은 장관이었다. 2천여 명의 관중 속에서 좌석이 없어, 울타리에 기대어 입석으로 관람하면서도, 두 시간여의 숨 가쁜 공연에 피곤한 줄 몰라 하셨다. 분위기나 규모면에서 전국노래자랑 등의 녹화공연 등만 보시던 경험에 비추어 그냥 압도당하며, 쇼룸에서나 볼 수 있는 생생한 공연에 눈을 떼지 못하셨다. 평생 처음 보신다 하시는데, 실은 사회생활을 하는 나도 그런 어마한 공연은 처음이었으니, 문화적 충격이 크셨던 듯싶다.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인상적으로 느꼈던 점은 교통이었다. 삼거리나 사거리, 오거리에 신호등이 없었다. 그런데도 교통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혼돈 속의 질서’라고나 할까. 모두 엉켜있는 듯 하면서도 알아서 건너가고 차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급하지 않았다. 택시나 오토바이의 속도가 시속 50㎞를 넘지 않았다. 사람들이 놀랄만한 과속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급하지 않은 베트남인들의 일상 생활에서도 배울 점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라도 건강하실 때 좀 더 잘 모셔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어머니께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으며 우는 것이, 아파서가 아니라, 힘이 없으신 어머님의 매질이 안타까워 울었다는 고사가 실감난다. 이번에 횡단보도에서 손잡고 건널 때, 당신의 젊은 시절 농사일에 집안일에 억세기만 하시던 손아귀가 이제는 너무나 힘없는 소녀의 손 같은 느낌에 가슴이 찡했다. 세월유수歲月流水가 안쓰러워 자수慈手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좀더 자주 여행 모시겠습니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나짱자수芽莊慈手의 두찬杜撰을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어머님이라 불리시는 모든 분들께 헌정獻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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