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사회2부 부장 이원규

필자가 젊었던 시절에는 G, S, H, D 기업에 취업하면 장가가는 데는 탄탄대로였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서로 자기 딸을 주겠다고 매달렸고, 중신아비들이 들락거려 문지방이 닳았다는 말이 제대로 된 표현이다. 그때만 해도 고시 패스가 아닌 일반직 공무원은 그렇게 좋은 값을 쳐주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와선 상황이 180도로 뒤집혔다. 도서관에서 공무원 시험과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수두룩하다. 경쟁률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단한 모양이다. 그야말로 공무원은 꿈의 직장으로 변했다. 세금으로 운영하기에 일반 기업처럼 구태여 품질이나 생산성을 높이려고 피 터지게 경쟁할 필요조차 없다. 눈치껏 버티기만 하면 정년까지 먹고 사는 게 보장되는 철밥통이라서 청년들 대다수가 선호한다.

도서관 식당에서 청년과 라면에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들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얘기를 해주었더니 그 청년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때 우리는 다소 허황하긴 했지만, 부정부패 없는 대통령에서부터 국회의원 혹은 나라를 지키는 대장 등을 가장 큰 꿈으로 꼽았다. 물론 여자 친구들은 백의의 천사 간호사나 선생님으로 그야말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회를 향한 봉사 정신으로 똘똘 뭉쳤었다. 그러나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하면 희귀종으로 취급받는단다. 무조건 돈이 먼저다. 직업을 택할 때도 돈이 되느냐 아니냐를 먼저 따진단다. 돈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세상을 구원하는 자는 ‘돈 많은 재벌이나 정치가’가 아니라 ‘꿈꾸는 청년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예전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답은 아무리 귀를 더 크게 열어도 들리지 않는다. 이미 개인주의로 의식이 굳어져 ‘노블레스 오블리주, 더불어 잘 사는’ 그런 얘기는 꼬리를 감추고 있다.

우리 때는 한 직장에 들어가면 거의 정년까지 그 자리에 박혔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회생활 10여 년쯤 지나면 직업을 바꾼단다. 최근 들어 최고의 인기 직종이 정치(?)란다. 이미 생계형 정치회사로 뛰어드는 선배들도 한둘이 아니란다. 지금도 그 판으로 갈아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단다. 교수·변호사·의사·사업체 대표 등의 그럴싸한 직업이 버젓이 있어도 서류상으로만 휴직하면 이중소득(?)이 생기니 이만큼 남는 장사는 없다. 그중에서도 국회의원 자리는 무소불위의 권력까지 주무른다. 운 좋게 정권을 잡은 여당 쪽이라면 그야말로 로또 당첨이다. 본인이 누리던 모든 특권은 물론 의원회관에 있는 방도 그대로 두고 그의 보좌진들 월급도 변함없이 꼬박꼬박 줄 수가 있다. 이미 국민의 혈세, 국가의 녹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생태계에서는 폐기처분이 됐다.

세상도 묘한 방향으로 뒤바뀌고 있다. 요즘 날씨조차 이상기온이 계속된다. 섣달 초나흘 대한(大寒)에도 추위는커녕 봄 날씨처럼 포근해 나뭇가지에는 새움을 터트리려고 성급하게 부푸는 놈들도 있다. 물론 며칠 후 한파가 예상된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지만, 그거야 그때 가봐야 믿을 수 있는 일이다. 일확천금이 간절한 청년들의 맘을 설레게 하는 암호화폐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은 거라면 돈맛을 아는 기업에서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너도나도 여기저기서 전담부서를 가동해 그것을 긁어모았을 텐데, 그런 소리는 듣도 보도 못했다.

세월 참 빠르게 간다. 양력설인 1월 1일이 엊그제 같은데 설이 바투 다가섰다. 설날이 목요일이라서 일요일까지가 연휴지만 금요일 하루나 마찬가지다. 3월은 삼일절뿐이고 4월은 아예 토·일요일 외에는 휴무가 없다. 추석도 월요일이라서 일요일을 포함한 수요일까지다. 올해 휴일은 법정 공휴일과 지방선거일을 포함한 69일, 총 119일로 1990년 이후 역대 최다라지만 작년처럼 재밌는 징검다리 휴일도 아니다. 에라! 만사 다 귀찮다. 이런저런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하자, 올해는 일하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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