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밖의 피투성이 소녀, 김이듬 시인의 ‘표류하는 흑발’

‘책방이듬’의 새해 첫 손님은 최정례 시인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최정례 시인은 필자의 고향(과거에는 오산·화성시가 한집안이었음) 출신이다. 필자의 아버지가 농사짓던 망월리에서 황구지천 건넛마을이 최정례 시인의 고향 정남면 문학리다. 최정례 시인은 그야말로 우리 고향 문학계에서는 큰 누님이다. 그런 연유로 ‘책방이듬’에 가서 취재하겠노라고 페북에 메시지를 올렸다. 매주 반복되는 일이지만, 시인들을 만나는 날은 옆지기 백조를 데리고 다닌다. 평소에 떨어져 있어 매주 목요일 오후부터는 취재 겸 여행 삼아 작가들의 집필실을 함께 방문한다.

김이듬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이듬’은 일산 호수공원 인근에 있다. 작은 호수가 아니다. 그냥 찾으려면 쉽지 않다. 제일 빠른 건 전화(031-901-5364)지만, 제2 주차장, 삼성메르헨하우스를 찾으면 된다. 이곳 책방이듬에는 시인이 아끼는 희귀본은 물론 시, 소설, 에세이, 철학, 인문학 서적들이 책장을 빼꼭하게 채웠다. 이 공간에서는 누구나 부담 없이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시인이 직접 내린 원두커피와 음료, 과자와 간단한 음식도 원하면 맛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물론 문학에 관련된 상담과 교육 그리고 좋은 책도 추천받을 수 있다.

지난해 가을, 책방을 오픈한 이후 공들여 추진하는 ‘일파만파 낭독회’는 10월의 마지막 날 밤 7시에 파주에서 김민정 시인이 우정 출연하여 시원스럽게 첫 번째 문을 열었다. 두 번째는 11월 9일 임우기 평론가가 ‘기형도 시 읽기’라는 주제로, 세 번째 강병융 소설가는 ‘아내를 닮은 도시’, 네 번째 서효인 시인은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다섯 번째 안웅선 시인이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 그리고 여섯 번째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장석주, 박연준 부부 시인이 방문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낭독하면서 2017년을 잘 마무리했다.

2018년 새해 첫 낭독회이자 일곱 번째는 최정례 시인을 초대해 ‘개천은 용의 홈타운’을 교차 낭독했고, 2부에서는 번역이 완료돼 창비에서 곧 출간될 시집 (시인:James Tate)에 실린 시들을 한국어와 영어로 낭독하며 감상했다. 다음 주 27일(토) 오후 1시에는 황인숙 시인이 진행하는 여덟 번째 낭독회가 예약돼 있다. 김이듬 시인은 월요일인 어제(15일)는 책방이듬이 휴일임에도 ‘미스터버티고 책방’으로 지원을 가서 ‘표류하는 흑발’ 낭독회로 힘을 보탰다.

김이듬 시인은 2001년 ‘포에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를 냈으며, 지난해 9월 민음사에서 펴낸 ‘표류하는 흑발’에서 시인은 도발적인 탄식으로 공동체의 폐부를 찌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이 세상을 마저 사랑하려 함을 고백한다. 특히 ‘명랑하라 팜 파탈’은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영어권 번역가 이지윤, 최돈미, 요한 고란슨에 의해 번역되어 해외에도 소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집 외에도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와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 등을 펴낸 바지런한 전업 작가다. 문학상으로는 제1회 시와세계 작품상(2010),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2011), 제7회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시상(2014), 제1회 22세기시인작품상(2015)와 김춘수시문학상(2015)을 받았다.

표류하는 흑발, 민음사, 160쪽, 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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