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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이야기] 남양주와 다산 정약용세상 밝힌 저서 500권 펴낸 ‘조선 최고의 지식인’
  • 이두 기자
  • 승인 2018.01.1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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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시가 올해를 ‘정약용의 해’로 지정했다. 다산의 고향인 남양주시는 세계적인 인물인 정약용의 위대함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겠다는 구상이다. 올해는 다산이 유배지인 강진에서 고향인 남양주로 돌아온 지 200년이 되고 그의 대표적 저서인 목민심서를 편찬한 지 역시 200년이 되는 해이다.

다산은 1762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태어났다. 한강이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었다. 아버지 정재원은 과거에 급제해 높은 벼슬을 지낸 학자였다. 다산의 어릴 적 이름은 귀농(歸農)이었으며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다산은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제법 문자를 알았다”고 회고했다. 7세 때 ‘산’이라는 시를 지어 영특함을 보였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다산이 10세 이전에 지은 시문을 모은 「삼미자집(三眉子集)」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1777년 다산은 자신의 학문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을 만난다.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이다. 다산이 두 살 되던 해에 성호가 세상을 떠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산은 성호의 글을 접하고 학문을 굳히게 되었다.

다산은 23세 때인 1783년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여러 차례의 시험을 통해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았다. 28세 때 (1789년)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였으며, 첫 벼슬인 희릉직장을 비롯하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쳤다. 수원성을 쌓는데 필요한 유형거와 거중기를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건의하여 예산을 절약하였다.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서는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 연천 현감과 상양 군수의 폭정을 고발하여 처벌하였다. 이를 통해 관리의 책임과 의무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다산은 1784년 사돈인 이벽(李檗, 1754~1786)으로부터 처음 천주교를 접하였다. 한때 천주교 서적을 읽고 심취하기도 하였으나 성균관에서 학업에 정진하느라 곧 손을 떼었다. 다산은 천주교 신앙과 서양과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곧 시련으로 이어졌다.

1800년 정조가 서거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다산은 생애 최대의 시련기를 맞는다. 노론과 남인사이의 당쟁이 1801년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는다. 다산은 포항으로 유배된다. 셋째 형 약종은 옥사하고 둘째 형 약전은 신지도로 유배되었다. 9개월이 지난 후 황사영 백서사건이 발생하자 다산은 서울로 불려와 조사를 받고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긴다. 강진에서의 18년 유배기간은 다산에게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알찬 결실을 얻은 수확기였다.

50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이루어졌다.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모아 교육하였으며, 제자들 또한 저술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유배지의 제자들로는 이청·황상·이강회·이기로·정수칠·윤종문 등이 있다.

다산은 1818년 57세 되던 해 가을 18년만에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온다. 다산은 저술을 수정하고 보완하는데 힘쓰며 자신의 학문과 생애를 정리한다. 목민심서를 완성하였으며 ‘흠흠신서’ ‘아언각비’ 등의 저작을 내놓았다. 회갑을 맞아 자찬묘지명을 지어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고 북한강을 유람하는 생활을 보내기도 하였다.

◆세상을 밝힌 다산의 저서들

다산 정약용은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담은 목민심서를 비롯해 경세유표, 흠흠신서, 여유당전서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저술했다.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지방관리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지방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해 자(子)·집(集) 등에서 치민(治民)과 관련된 자료를 뽑아 저술한 목민심서 (1818/48권)는 48권 16책으로 되어 있다. ‘목민심서’는 지방관리의 부임으로부터 해임에 이르기까지 전 기간을 통해 반드시 준수하고 집행해야 할 실무상 문제들을 각 조항으로 설정해 엮었다. 다산은 한때 곡산부사 등 지방관리로 직접 백성을 다스렸으며, 18년 동안의 강진 귀양살이를 통해 백성이 국가권력과 관리의 횡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국가의 전반적인 개혁안을 담은 경세유표(經世遺表·1808~1817/44권)는 미완성 작품이며 44권 15책으로 되어 있다. 기술 발달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강병 등 실학자들의 연구 성과도 폭넓게 담겨 있어 당시 실학자들의 정치·사회적 이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흠흠신서(欽欽新書)의 흠흠(欽欽)이란 걱정되어 잊지 못하는 모양을 말하는 것으로 죄수에 대하여 신중히 심의(審議)하는 흠휼(欽恤)사상에 입각하여 재판하라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책에 나타난 저명한 판례를 뽑아 저술했다.

이두 기자  ld@1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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