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시인의 산문집 ‘하루 맑음’

김태형 시인은 필자의 첫 시집 발문을 썼던 인연이 있다. 그때가 1994년, 그의 나이 24세 때니 어언 24년 전이다. 이따금 SNS를 통해 그의 근황을 접하긴 했지만, 서로 소통한 적은 없었다. 필자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수원시 화서동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를 만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를 만나려고 약속을 잡았다. 그날은 일요일이며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맨날 밖으로만 싸돈다고 불평하는 옆지기에게 서울에서 맛있는 거 먹자니 웬일이냐 반색하며 목도리까지 두르고 앞장선다. 사실은 취재차 데리고 가는 건데….

필자가 방문할 곳은 ‘문래동 예술창작촌’이다. 김 시인에게 카톡으로 만나자 했더니 저녁 5시반부터 6시 사이에 짬이 난단다. 문래역 7번 출구에서 사거리까지 직진 후 횡단보도 건너서 한진정밀 골목 끝집이라며 네비보다도 더 꼼꼼하게 일러준다. 문래역 지하 계단을 올라섰지만, 예술촌 분위기가 아니다. 조금 걸으니 못을 빼는 장도리와 용접 가면의 조형물도 보인다. 점포들이 대부분 70년대식이다. 특별한 점이라면 셔터에 그려진 남다른 벽화 뿐이다. 간신히 유모차가 드나들 만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낡은 집에 온통 청색 페인트로 칠한 대문에 ‘청색종이’라고 백발로 인쇄돼 있다.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김 시인은 수강생들 앞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설명하는 중이다. 백석 시집을 수제본으로 재현하는 강좌란다.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도서관에서도 특강 러브콜이 쏟아진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김태형 시인은 몇 해 전에 고비사막과 인도를 여행한 후 두 권의 여행기를 펴낸 바 있다. 세 번째 산문집 『하루 맑음』은 글과 사진은 물론 디자인에서 편집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 그야말로 종갓집에서 음식을 차릴 때처럼 정성을 다해 맛과 멋을 낸 정갈한 문장의 산문집이다. 소재도 아들과 딸에게 만들어준 간식에서부터 파스타와 수제 맥주 만들기까지 다양해서 소소하지만 쉽게 공감할 재밌는 이야기들이라서 흥미롭고 화보들 또한 시원스럽게 넣어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글은 영악하지 않고 착한 사람이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 시인은 책날개 뒤쪽 안에도 이런 다짐을 새겨놓았다.

‘어떤 문장은 급기야 당신이 되려고 한다. 모든 것이 되려고 한다. 좋은 문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을 창조해낼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동시성 속에서 한 문장이 비로소 스며 나온다. 저 홀로 외로운 길을 찾아가는 문장을 기다릴 것이다.’

‘하루 맑음’, 필자는 단 하루도 가족끼리 식탁에 앉아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식사했던 날은 없었다. 그런데 남자가 무슨 요리까지…. 물론 백, 최, 이 아무개 셰프 같은 사람은 방송에 나와 앞치마까지 두르고 칼을 잡긴 하지만, 음식은 주부나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에 정통으로 명중시켰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단순히 요리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명문장으로 이뤄졌다.

김태형 시인은 양력으로는 70년생 개띠이다. 1992년 ‘현대시세계’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로큰롤 헤븐’,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코끼리 주파수’, ‘고백이라는 장르’와 시선집 ‘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그리고 산문집으로는 이번의 ‘하루 맑음’ 외에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아름다움에 병든 자’ 등이 있다.

하루 맑음, 청색종이, 256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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