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완 (시인)

‘손창환 님 귀하’ 지인으로부터 보내온 우편물에 쓰여 있는 이름이다. 도착한 편지 수신인 란에 이따금 불리는 이름이 ‘손창환’이나 ‘송창완’은 나의 정확한 이름이 아니다. 모든 사물과 동·식물 등에 붙여진 이름은 나름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한 번 붙여진 이름과 명칭은 여간해서 변경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오래전부터 지리적 특색이 반영된 지명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더욱 그렇다.

지난 11월10일 인천광역시 남구 명칭 변경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어 인천광역시 남구가 미추홀구로 변경된다는 소식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주소는 읍·면·동명과 토지번호인 지번을 결합한 것이다. 지번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에 식민 통치와 조세 징수 등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작성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은 우리와 상관없이 임의적으로 동네이름과 지명이 사라지거나 통폐합 되는 등 1906년의 행정구역 개편안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 우리는 전통적 땅 이름과 문화가 반영된 도로 명을 붙일 것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행정관청은 이 사안을 명확히 인지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도로명은 해당 도로 구간의 역사적 유적·인물·지역 연혁·공공시설·주요 시설 이름을 반영한다. 또한 동일한 이름으로 인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시·군·구는 같은 도로 명을 만들 수 없도록 했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평택지역의 예를 들어보자. 서정리역 앞에 ‘서정역로’ ‘정암로’로 되어 있다, 비전동 한 가운데에는 평택로 도로명이 지정되어 있다.

 사실 ‘평택’이라는 지명은 본래 팽성지역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인데.. 1980년대 송탄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불악산이 소재한 서정지구에 대단위 택지개발사업을 진행했다. 이때 불악산은 3분의 1이 사라지고 1995년 평택시로 통합되면서 체육시설·운동장을 건설한다는 미명 하에 또다시 수난을 당했다. 향토사와 관련된 생태적 가치가 있는 문화자산 또한 눈 깜짝할 사이에 파괴되고 소멸됐다. 게다가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불악산이란 이름도 사라졌다. 불악산은 시대에 따라 불악산(佛樂山)과 부락산(負樂山)으로 불린 적이 있다. 역사적 고증자료에 의하면 조선시대 영조 33년 1757~1765년에 만들어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현의 남쪽 10리에 있고 양성현 천덕산에서 그 줄기가 이어져 온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시사(市史)에 있는 ‘부락산·負樂山’ 명칭은 19세기에 발행한 <진위읍지·振威邑誌>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진위읍지>의 근간이 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군현지도인 <해동지도·海東地圖>와 조선 후기 국정을 총괄했던 비변사에서 만든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 그리고 <대동여지도>에 ‘불악산’ 산명이 또렷이 기록돼 있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불악산’이라고 불리던 명칭이 송탄시 당시 ‘부락산’이라고 정해졌다. 대다수 시민의 동의 없이 변경된 이름에 대해 당시 송탄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이왕 바뀐 지명이 지역 주민들이 불러주면 바꿔도 괜찮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도로명 중에는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해당 지자체가 주민 의견을 수렴해 부여하기도 한다.

진위현 지도

오산시에 있는 산명 중에 금오산을 필봉산으로, 지명으로는 의왕시에서 儀旺市을 儀王市로 변경했다. 옛 산명과 지명을 찾은 좋은 사례라고 할 것이다, 평택시 뿐만 아니라 대규모 택지개발단지 조성 및 도시화 만들면서 이왕이면 잃어버린 옛 지명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대적으로 잘못 변경된 지명과 산명 그리고 이름를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할아버지가 손자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손자가 선조와 조상님들이 지은 이름을 고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해야할지, 그리고 지명과 이름을 정할 때 종합적인 검토 없이 다수결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합당한지 다시 한 번 더 묻고 싶다.

행정 지명도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의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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