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SNS 홍보팀장

1989년은 내게 있어서 새로운 인생의 원년이다. 공무원으로서의 첫 발을 들여 놓았고 결혼의 길에 들어섰으니 말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김장을 담궜다. 물론 결혼 초기 몇 해는 장모님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으나 다른 이의 도움 받기를 선천적으로 꺼리는 기질 때문이었던 걸까? 오롯이 나의 솜씨만으로 김장을 담그는 것이 더 좋았다. 

아내는 결혼 초기부터 김치는 담글 줄을 모른다고 하였고 나는 담글 줄 아는 것이니만큼 내가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건전한(?) 생각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꼿꼿이 해마다 김장을 담그고 있다. 

어느 해엔가는 김장 하는 날 아내에게 걸리적거리니까 나가라고 했더니 딸 애와 영화를 보러 다녀온 적도 있었다. 혼자하는 김장이 속은 편하지만 힘이 들기는 하다. 요즘엔 아내가 양념거리를 다듬어주고 뒤치다꺼리를 해주니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역시 혼자보단 둘이 낫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공무원으로 임용될 당시 공무원 월급보다 두 세곱절 많은 중견기업에도 합격을 해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는데 며칠을 생각한 결과 미래지향적인 삶을 위해 공무원을 택했다. 그러나 공무원으로서의 삶은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에 생각했던 것처럼 녹록치 않았다. 업무시간외에 이루어지는 이른 아침의 새마을대청소, 눈·비로 인한 비상근무 등은 공무원으로서의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1995년 어느 날 아침 순찰을 하며 일상적으로 하던 벽보제거 작업을 할 때에 지나가던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너도 공부 열심히 안하면 커서 저런 일 하게 되는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의 일원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무렵인 1995년부터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래 매년 김장을 할 즈음이면 공무원으로서 막중지사가 있다. 공무원사회에서 1년 농사를 짓는다고 일컫는 예산편성이다. 

주어진 업무를 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꼼꼼히 적어놓았다가 내년도 사업계획에 반영하고 사업수행에 필요한 예산은 예산심사 권한이 있는 지방의회에서 최종 의결하여야만 비로소 예산으로서의 지위가 확보된다. 내가 예산을 요구하더라도 의결되기까지는 늘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예산편성 권한이 있는 실무부서의 검토를 거치면서 칼질을 당하고 의회에서 심사를 할 때면 내가 요구한 예산은 누더기가 되기 마련이다. 

내가 사업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적정예산을 잘 꾸렸어도 그렇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릴때면 내 안에서 요동치는 자괴감때문에 과연 공무원으로서의  첫발을 잘 떼었던건지 자책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언 30여 년을 버텨왔고 김장도 예산편성도 매년 해야 하지만 이제는 나의 자존감을 스스로 지켜주어야만 할 때인 것 같다. 오늘은 어제 칼질 당한 예산이 다시 부활되기만을 기다려 본다. 나의 깊은 곳에 자리한 그 님처럼...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