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사회2부 부장 이원규

이젠 김장도 끝물이다. 김장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돼지고기 두어 근 푹 삶은 수육이다. 소금에 절인 배추의 노란 속잎에 붉은 양념소와 탱글탱글한 생굴, 팔딱팔딱 뛸 것 같은 새우젓을 얹어 쌈 싸 먹던 생각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돈다. 곳곳에서 보여주기 혹은 생색내기 김장 나눔 행사도 유난히 많았다. 신문이나 방송도 정치인들 따라다니며 사진 찍어주느라 정신없이 바빴을 게다. 하얀 비닐 모자를 머리에 쓰고 앞치마도 두르고 고무장갑까지 끼긴 꼈으나 김장을 돕는 건지 방해한 지는 현장에 없었으니 알 수야 없다. 요즘에는 김치도 웬만하면 사 먹는 시절이라서 김장을 안 해본 사람도 많다.

갑자기 날씨까지 쌀쌀해졌다. 세상까지 뉴스 보는 것조차 민망스러울 정도로 이상야릇하게 돌아간다. 막 저녁상을 물리고 잠시 밖에 나가려는 찰나, 스마트폰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바탕화면에 ‘엄니’라고 떴다. 한낮에는 전화를 주신 적은 있지만, 저녁나절에 전화는 안 거시는데, 웬일일까 깜짝 놀랐다. 단축키 2번인 둘째 동생에게 전화하시려다가 장남 번호인 1번으로 잘못 눌렀던 때는 종종 있었다. 혹시라도 편찮으신 건 아닌지 싶은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다.

“너는 많을 것 같아서 전화했다.”
“제가 많은 게 뭐가 있어요?”
“넌 신문사 댕기니까 많을 거 아니냐.”
사실 요즘 마음먹은 대로 알이 풀리지도 않고 돈에 관한 얘기라면 딱 자를 참이었다.
“넌 그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런다.”
“없어요, 진짜요.”
“없다고? 개똥도 약에 쓰려면 귀하다더니, 쯧쯧.”

얘기인즉슨, 신문지 좀 얻으려고 경비 아저씨한테 부탁했더니, 때마침 반출된 날이라서 한 장도 안 남았다는 거였다. 많은 건 아니지만, 스크랩하려고 서재에 쌓아놓은 신문이 꽤 있다. 뭐에 쓰실 거냐 했더니 김장도 해야 하고, 무와 배추를 보관해야 한단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닌 채소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다용도실에 보관하셨다. 상처만 없다면 한겨울이 지나고 봄까지 너끈하게 저장돼 별식을 맛보기도 했다. ‘네네, 낼 아침에 당장 가져갈게요’라고 대답한 후, 부랴부랴 스크랩할 것을 추려냈다. 나머지 신문지를 간종그려 라면상자에 넣으니 다섯 상자나 됐다. 덕분에 뒤로 미뤘던 스크랩 작업을 개운하게 끝냈다.

지금도 총각김치와 동치미는 어머니께서 손수 담가주신다. 김치냉장고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밖에 내놨더니 벌써 신맛이 난다. 다행히 식구들이 그 맛에 길들어져 맛나게 먹어치워서 바닥이 보이니 천만다행이다. 행사가 많은 계절이라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김치를 먹어봤지만, 역시 어머니 손맛에는 어림도 없다. 다행스럽게도 집사람 솜씨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는지라 안심이 된다.

먹거리로 장난치지 말라 했다지만, 김치를 역대 정권에 빗대며 끝내겠다. 양코배기들 버터 냄새나는 이승만 정권은 접어두고, 반대파는 가차 없이 처단했던 박정희 정권은 보쌈김치, 조폭 전두환은 깍두기, 노태우야 당연히 물김치, 외환위기 김영삼은 파김치, 뒤늦게나마 대통령이 된 김대중이 묵은지, 임기도 못 채운 박근혜는 겉절이라면 노무현, 문재인 정권은 김장김치다. 왜냐하면, 차기 대권 주자인 모, 모 지사에게 “차차기에 나오시면 안 됩니까?”라는 젊은 청년의 질문에 “왜 김장 잘 해놓고 묵은지로 먹으려고 해요?”라고 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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