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묘를 쓰면 5대 후에 왕이…" 명당자리로 암시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 두타산 정상에 전주이씨 17세손 양무장군(陽茂長軍) 묘소가 안치된 두타산 산행을 하고 돌아왔다. 

현대인들에게 이상하고 신기하게 여겨지는 준경묘(濬慶墓)는 백우(百牛) 금관(金棺) 설화로 전해지는 이곳을 삼척시민들은 릉(陵)으로 부르는 묘소로 산행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우리 일행은 지난 10월 높고 프른 가을하늘아래 울긋불긋 오색이 찬란한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을 맞아 두타산 밑 주차장에 도착, 주차장 주변의 감나무에는 노란 감이 탐스럽게 일행을 맞이해 주어 이날 산행은 더욱 즐겁고 상쾌 할 수 있었다.

800m 되는 가파른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가니 1km의 정상길 주변은 곧게 하늘을 향해 치솟은 소나무들이 양옆으로 줄비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평편한 10만여 ㎡ 광장 묘소 아래는 정자각과 수락간이 갖추어져 있었고 수락간옆엔 맑은 샘물이 반기어 주었다.

갈증이 났던 일행들은 물을 떠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니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묘소에 올라가 앞 전경을 바라보니 한폭의 동양화 같았다.

넓은 광장에 정자각과 수라간이 외로히 묘소를 지켜주고 주위의 산은 울창하고 단풍계절을 맞아 더욱 보기도 아름답고 묘소앞 광장은 넓고 광활하여 신기한 곳으로 백우금관 설화(白牛金棺) 로 전해지는 곳으로 전혀 의심이 가지가 않았다. 

묘소에서 전면을 내려다보니 광활한 광장에 제향을 모시는 정자각과 수라간이 한폭의 그림으로 보여지고 양옆 산맥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가 선명하게 보이는  풍수지리(風水地理)를 모르지만 명당자리로 보였다. 

현재 이 곳 주민들은 묘소를 왕릉으로 부르며 백우금관 설화가 전해져 오는 묘소라고 말했다. 

 양무장군의 아들인 목조(이안사)는 부친인 양무장군이 세상을 떠난 후 부친의 묘자리를 찾던 중 힘이들어 지금의 준경묘 자리에서 잠시 쉬다가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도승과 함께 길을 가던 상자승이 "이곳에 묘를 쓰면 5대 후에 왕이 나겠구나" 라고 말하자 앞서가던 도승이 "네 이놈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였거늘 어디 함부로 입 밖에 내느냐" 라며 상자승을 엄하게 꾸짖었다, 

이 소리를 들은 목조는 도승에게 "대사님 방금하신 말씀을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라고 애원을 하였다.
그러자 도승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더니 이곳에 묘를 쓸려 개토제에 소 백마리, 술 백동이와 관은 금관으로 준비하여 장사를 지내야 한다오"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목조는 "대사님 그것을 틀림없이 하겠습니다" 라고 하자 도승은 "이 자리는 당신의 묘자리니까 쓰도록 하시오" 하고는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내가 간뒤 오늘밤 이 자리에 계란을 하나 묻고 지켜보면 알 것이요"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는 꿈에서 깨어나 그날밤 목조는 이곳에 계란을 묻은 뒤 멀리서 지켜 보았다. 

자정이 넘자 숫닭이 회를 치는데 밤중에 울리는 소리가 심산유곡을 흔들 정도였다.

그리하여 목조는 이곳이 분명 명당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아버님의 장사를 준비하였다.

하지만 목조는 가난하여 소 백마리와 금관을 준비할 수 없어 고민을 하다가 처가에서 흰소(白牛)를 빌려다가 잡아 소 백마리를 대신 하였고 누런 귀리 짚으로 관을 엮어 금관대용으로 하고는 술 백동이를 준비하여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뤘다.

이렇게 장례를 치루고 5대 후에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었는데 이 일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업하고 등극하기 162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또한 백우(百牛)를 백우(白宇)로 대신하여 1천년 사직이 반으로 줄어 500년사직이 되었다고 하고 또 준경묘는 안산을 바라보며 좌로 근산 우로 대명산이 있고 뒤로 방위산과 역마산이 있어 주변의 산 5봉의 수명이 각각 1백년이라 하여 도합 500년의 사직을 유지했다는 백우 금관설화가 전해지는 두타산은 산행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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